19년 전 데뷔한 한 아이돌 그룹의 극적 재결성만을 읽는다면, MBC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즌2’(이하 토토가2)는 ‘팬들의 잔치’에 불과할 지 모른다. 그러나 ‘토토가2’가 소환한 것은 젝스키스와 이들이 활동하던 십수년 전의 분위기 뿐만이 아니었다. 조건 없이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할 수 있었던 날들의 열정과 감성이 ‘토토가2’를 통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지난 14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토토가2’ 콘서트가 열렸다. 무대의 주인공은 1997년 데뷔해 H.O.T.와 아이돌 양강 체제를 이뤘던 젝스키스다. 스포일러 탓에 무산됐던 게릴라 콘서트 형식을 일부 빌려왔지만, 관객이 단 한 명이었단들 퇴색될 자리가 아니었다. 콘서트장 한켠을 노란색으로 가득 물들인 팬들의 열기는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도 식을 줄 몰랐다.
당초 젝키 멤버들이 전부 안대를 벗고 난 후 이들에게 선사하기로 예정돼 있던 팬들의 이벤트는 환호와 눈물바람으로 대체됐다. 서로가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팬과 젝키에게는 큰 사건이었을 터이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16년 만의 컴백을 자축하듯 ‘Com'back’으로 시작된 무대는 ‘기억해줄래’에서 절정에 달했다. 비단 고지용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다. 팬들은 이 노래에서 젝키와의 첫 만남과 작별의 순간을 떠올렸다. 데뷔앨범 수록곡인 ‘기억해줄래’의 ‘너를 나의 전부로 만들지는 말라고 했던 네 말 / 아마도 오늘을 준비했기에 눈물을 보인 거야 / 나 안녕이라는 말로 너를 떠나겠지만은 / 기억해 줄 수 있니 우리 서로 사랑한 것을’이라는 후렴은 지난 2000년 ‘드림콘서트’에서 닥친 준비 없는 이별을 예고하듯 슬펐던 까닭이다. 이들을 단 3년 밖에 볼 수 없을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좋아할 것을 그랬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기실 젝키 팬들 가운데는 해체 이후 연예계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 버린 고지용을 향해 아쉬움 섞인 원망을 표현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콘서트에서는 일반인에서 연예인으로,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간 고지용에 대한 이해의 자리도 마련됐다.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콘서트장을 찾은 이도, 무대 시작 직전까지 노트북을 켠 채 업무를 보던 이도 있었다. 안대를 벗기 전 적막한 공연장에 퍼진 아기 울음 소리를 막아보려다 결국 자리를 뜬 팬을 다른 팬들은 안쓰럽게 바라봤다. 이제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쉽지 않은 선택들을 반복했을 고지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그들이었다. ‘기억해줄래’ 무대를 마친 후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만 고지용을 향해 팬들은 박자 맞춰 “젝키짱”을 외치듯 “고마워”를 연호했다.
이 공연에서 재회한 것은 팬과 젝키만이 아니었다. 16년 만에 조우한 팬들은 녹화가 끝난 후 삼삼오오 모여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한 젝키 팬은 “예전에 공연장에서 봤던 팬들은 지나가다 봐도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사회에서 자리 잘 잡고 치열하게 사는 걸 보니 느낌이 이상하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노잼’이라고, ‘추억팔이’에 불과하다고 낮춰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기했듯 ‘토토가2’를 통해 우리가 되새길 수 있는 것은 뜨거웠던 마음이다. 젝키 멤버 은지원은 이날 이 자리에 모인 팬들의 첫사랑을 자처했고, 강성훈은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라고 아이돌다운 인사를 건넸다. 뭐가 됐든 감정적인 표현들이 ‘오그라든다’는 말로 폄하돼 버리는 요즘, 다시 한 번 열렬해 질 수 있는 계기기도 하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봉봉’을 보며 울고 말았던 것처럼, 관객들은 다시 돌아온 젝키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19년 전 오늘, ‘여섯 개의 수정’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젝키가 데뷔했다. 오는 16일 방송되는 ‘토토가2’는 이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잊혀진 열정이 데뷔하는 순간이 될 듯하다. /bestsurplu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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