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보는 시청자들은 아마도 공감할 것이다. 아픈 건 이성민인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지켜보는 '나'의 몫이다. 명품 배우가 보여주는 실감나는 연기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기억'(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내보려 하는 태석(이성민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태석은 알츠하이머 증세로 또 다시 전 부인인 은선(박진희 분)의 집 앞에 갔다. 마침 퇴근하던 은선이 그를 발견했고, 기억을 잃은 상태로 "동우 배고프겠다. 새우 초밥 넉넉히 사왔다"는 태석의 엉뚱한 말에 당황했다.
이어 죽은 아들의 언급에 화가 난 은선은 태석의 뺨을 때렸고 "술주정도 정도껏 하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이 든 태석은 황급히 사과를 하고 집을 나왔지만,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자신의 상태에 절망스러운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같은 시간, 태석의 아내 영주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며 그를 찾아다녔다. 은선의 집까지 갔다가 남편이 그곳에 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결국 홀로 황망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태석을 찾아냈다.
태석은 "차라리 암이라면 수술을 하든 방사선 치료를 하든 뭐라도 해볼텐데. 도대체 이놈의 병은 뭘 어떻게 할 재간이 없다. 꼼짝없이 당하고 있으려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실망한 남편에게 영주는 "노력하면 지금 이대로 10년 20년 30년 유지할 수 있다"고 위로했고, 태석은 "정우 대학 졸업 때까지만 버텨주면 좋겠다. 정우 졸업하고 취직하는 거 보면 그나마 좀 안심이 될 것 같은데.."라며 가족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몰래 부모님 집을 찾아 홀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태석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나, 머리만 고장난 게 아닌 것 같다. 머리는 자꾸만 기억을 지우는데 마음은 자꾸 기억을 떠올린다"며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은 머리가 지우고 죽도록 잊고 싶은 기억은 마음이 기억한다. 고장난 건 머리인데, 왜 아픈 건 마음인지 모르겠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천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넋두리를 하는 남편에게 영주는 "그렇지 않다. 당신 좋은 사람이다. 내가 안다. 그래서 당신하고 결혼한 거다"라며 "지금도 좋은 사람이다. 나한텐 항상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좋은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럴거다"라고 기운을 북돋았다.
이후 태석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고 "내 기억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삶을 살아갈 것을 가족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며 의지를 드러냈다. 또 회사에 가서는 평소보다 한 톤 밝은 모습을 보이며 지켜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기억'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성민의 탁월한 연기는 더 이상의 말이 불필요할 정도다. 갑작스럽게 닥친 병마에 당황하지만, 그대로 삶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가장 태석은 이성민의 명연으로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불현듯 정체를 드러내는 알츠하이머에 당황했다가, 사랑하는 아내의 말에 힘을 냈다가, 또 죽은 아들의 뺑소니 사고 범인을 예리하게 쫓았다가, 자신이 맡은 사건을 풀어갈 때는 박력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적인 대사 전달과 폭발하는 듯한 감정 연기는 이성민이 가진 최고 장점.
갈수록 태석이 처한 상황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시청자들은 이성민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1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린다고 표현한다. 앞으로 '기억'에서 보여줄 이성민의 변해가는 모습이 기대감을 안긴다. /eujenej@osen.co.kr
[사진] '기억'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