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욱씨’, 엄마 김선영이 넘어질 수 없는 이유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4.16 06: 56

‘욱씨남정기’ 속 김선영은 그야말로 억척스럽다. 때로는 ‘욱본’ 이요원보다 훨씬 쉽게 ‘욱’할 때가 많다. 그런 그가 이상하게도 순순히 고개를 숙일 때가 있다. 회사일을 하기도 바쁜데 육아에 가사까지 독박을 쓴 그는 이 모든 것을 완벽히 하지 못했다며 눈총을 받고, 그래서 “미안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은 그에게 사과를 강요한다.
지난 15일 방송된 JTBC ‘욱씨남정기’에서는 ‘워킹맘’ 한영미(김선영 분)의 고생담이 펼쳐지며 공감을 자아냈다. 그러나 씁쓸함도 함께였다.
엄마와 아내로서 직장인이라는 것은 죄고, 직장인으로서 엄마와 아내라는 사실은 걸림돌이 된다. 맞벌이를 하는 한영미 부부 대신 아이를 봐 주던 시어머니가 돌연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선포하자, 바로 문제가 닥쳤다. 부부는 둘 다 야근을 해야 하는데 당장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올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영미는 남편과 입씨름을 벌인다. 그 대단한 야근을 포기한 것은 ‘엄마’ 한영미였다.

한영미는 어린이집으로 달려갔지만 따가운 눈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다음부터는 늦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럴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앞날의 미안함까지 담아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다음 관문은 회사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조금 늦게 출근한 한영미를 남자 사원들은 지독히도 타박한다. “아저씨들은 안 그러는데 아줌마들은 애 핑계를 댄다” “이래서 아줌마들은 안 된다니까”라는 인신공격도 견뎌야 한다. 아저씨들이 아이를 본다면 그들도 애 핑계를 대겠죠, 라며 치밀어오르는 ‘욱’을 꾸역꾸역 목 밑으로 삼켰을 한영미다.
이제 집으로 돌아온 한영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와 빨래다. 손발을 다 동원해도 일이 줄지 않는 마당에 매일 늦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조금 했더니 “달랑 몇 푼 벌자고 그럴 거면 회사 때려 치우라”는 말이 돌아온다. “애 보는 게 손해냐. 엄마가 되서 할 소리냐”는 적반하장은 덤이다.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실감났다.
같은 여자인 옥다정(이요원 분)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밖에 없던 한영미에게 “이 일이 한과장한테 그렇게 대단한가”라고 묻는다. 옥다정 역시 일을 하느라 자신을 돌봐주지 못했던 어머니에게 서운함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겠지만, 한영미는 결국 폭발해 회사를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아이는 엄마가 뛰다 넘어질 걱정을 한다. ‘엄마’ 한영미는, 등으로 전해져 오는 아들의 온기 때문에 결코 넘어질 수 없었다.
‘욱씨남정기’는 이처럼 ‘워킹맘’은 있어도 ‘워킹대디’는 없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여자라서’ 당연한 것들이란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진대, 아직도 철지난 강요에 고통받는 여성 직장인이 넘쳐나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욱씨남정기’가 제시한 것은 환상 속에나 존재할 따뜻한 배려였다. 드라마로나마 볼 수 있는 것을 다행스레 여겨야 하는 현실이 쓰다.
이 드라마는 동시에 철학적 화두도 던진다. 행복한 삶을 위해 일한다지만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욱씨남정기’ 속 현실의 끝을 달리는 등장인물들처럼 말이다. 톨스토이는 신의 입을 빌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묻고, 천사를 통해 ‘사랑’이라는 대답을 이끌어 냈다. ‘욱씨남정기’가 던진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과연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bestsurplus@osen.co.kr
[사진] ‘욱씨남정기’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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