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작가들의 힘이 큰 장르적인 특성이 있다. 배우가 약하면 지갑을 도통 열지 않는 영화 관객과 달리, 주구장창 틀어대기 때문에 접근성이 쉬운 방송의 특성상 이야기가 재밌으면 입소문이 타기 쉽기 때문. 그래서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고 했고, 썼다 하면 화제작인 스타 작가들의 명성은 웬만해서 금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믿고 보는 대표적인 스타 작가는 ‘내딸 금사월’ 김순옥부터, ‘태양의 후예’ 김은숙, ‘괜찮아 사랑이야’ 노희경, ‘프로듀사’ 박지은, ‘참 좋은 시절’ 이경희를 꼽을 수 있다. -편집자 주-
김순옥 작가는 철저한 선악 대립 구도로 권선징악의 짜릿한 쾌감을 안기는 작가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대한 호불호와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일단 시청률 보증수표인 것은 반박 못할 사실이다.
김순옥이라는 작가를 세상에 알린 작품은 2008년 안방극장을 강타한 SBS ‘아내의 유혹’이었다. 파렴치한 불륜 남녀인 정교빈(변우민 분)과 신애리(김서형 분)에게 복수하기 위해 교빈의 전 아내인 구은재(장서희 분)가 점을 찍고 민소희로 변신해 교빈과 애리를 무너뜨리는 이야기였다. 점을 찍었다는 이유로 은재를 알아보지 못한 교빈과 애리는 결국 파멸의 길을 걸었고, 은재가 새로운 사랑을 하며 시청자들을 뿌듯하게 하는 마무리였다. 점을 찍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한다는 설정은 8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회자가 될 정도로 강렬했다.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겼고 120부에서 129부로 연장됐다. 은재의 위기와 극복, 매섭지만 당연한 복수는 흥미진진했다. ‘막장 드라마’라는 꼬리표가 붙긴 했어도 안 본 사람이 없다는 ‘국민 드라마’로 불렸다. 극적인 순간마다 흘러나왔던 차수경의 ‘용서 못해’는 절절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음색이 인상적이었고 전주만 들어도 따라부를 수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인기 곡이었다. 워낙 결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 종영 일주일을 앞두고 결말이 유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이 작품은 중국판이 제작돼 추자현을 중국 안방극장 신데렐라로 만들었다.
김순옥 작가는 유쾌한 정서를 작품 속에 집어넣으며, 자극적인 이야기의 강도를 낮추는 방법을 쓴다. ‘아내의 유혹’ 역시 곳곳에 포진된 웃음 장치가 매회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극성 강한 전개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다소 비현실적이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이는 김순옥 작가 작품이 매번 걷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욕하면서 흥미롭게 보는 드라마, 마지막 악의 축들이 몰락하는 그 한 장면이 안기는 통쾌함을 기대하며 끝까지 리모컨을 붙들게 되는 드라마를 김순옥 작가는 써왔다.
김순옥 작가는 2007년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를 시작으로 다섯 글자의 제목을 이어오고 있다. ‘아내의 유혹’(2008), ‘천사의 유혹’(2009), ‘웃어요 엄마’(2010), ‘다섯 손가락’(2012), ‘가족의 탄생’(2012), ‘왔다! 장보리’(2014), 그리고 가장 최근까지 방송됐던 ‘내 딸 금사월’까지 모두 다섯 글자 제목이었다.
다섯 글자 제목 뿐 아니라 김순옥 작가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웃음기가 묻어나는 악역이다. 천하의 ‘못된 놈’인데 덜떨어지는 허점이 하나씩 있어서 복수를 해야 하는 주인공에게 놀아나기 딱 좋았다. 흔히 말하는 극성이 센데다가 시청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전개를 보이는 ‘막장 드라마’ 작품 속 악역들이 극악무도한 특징이 있는데, 김순옥 작가의 악역들은 어딘지 모르게 짠하고 웃긴 요소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았던 ‘아내의 유혹’ 교빈이 결국 거지가 돼서 길거리를 처량하게 돌아다니거나, ‘내 딸 금사월’ 강만후(손창민 분)가 신득예(전인화 분)에 대한 지독한 순정으로 인해 사리분별을 못해 매번 뒤통수를 맞는 이야기가 그랬다.
복수를 이뤄야 하는 주인공은 늘 위기 속에 놓이나 주변 인물들의 도움과 복수에 대한 강한 열망 속 다시 힘을 키우게 되고 시청자들은 주인공을 응원하며 김순옥 작가를 언제나 선택했다. 이 같은 어떻게 보면 매번 같은 이야기인데 안방극장은 김순옥 작가 특유의 빠른 전개와 파격적인 설정, 그리고 재밌는 요소들에 늘 응답했다. 간간히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시청자들의 힐난을 재밌는 설정으로 유쾌하게 넘어가는 대범한 작가이기도 하다. '왔다! 장보리'에는 점을 찍은 연민정(이유리 분)이 등장해 시청자들을 웃게 했다.
마냥 미워할 수 없고, 그가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로 안방극장을 기함하게 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더욱이 김순옥 작가는 독특한 정신세계와 외골수인 많은 작가들과 달리 흔히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엄마이자 소녀 감성을 가진 '아줌마 작가'로 유명하다. 제작진, 배우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 대처도 능동적이라는 후문. 그래서 김순옥 작가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배우와 제작진이 언제나 가득하다.
여기에 시청률 고공행진, 주말 혹은 일일드라마인데 웬만한 평일 프라임 시간대 드라마를 뛰어넘는 화제성을 가진 것 역시 방송가가 김순옥 작가에게 줄을 서는 이유다. 물론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의 범주에 들어가고, 공감 요소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지만 매번 흥행을 낚아채는 몇 안 되는 작가임은 분명하다. 1~2년에 한번씩 새 작품을 하는 성실한 작가 김순옥의 차기작은 무엇일까. / jmpyo@osen.co.kr
[사진] MBC,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