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요즘 연예계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글이 먼저입니다. 제 아무리 인기 있는 톱스타가 줄줄이 나와도, 천하에 둘도 없을 명감독이 메가폰을 잡아도, 극의 기본이 되는 스토리(글)가 탄탄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성쌓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스타작가들을 바라보는 눈과 대접이 달라지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특히 드라마에서 특A급 작가들의 영향력과 파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가장 핫한 스타작가 톱 5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김은숙 작가는 여자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작가다. 동시에 남자들에게는 ‘보는 눈’의 기준을 말도 안 되게 끌어올려 놓는 다소 불편한 존재. 여 주인공은 그 어떤 작가보다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남 주인공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없을 백마 탄 왕자로 표현해내며 판타지를 자극한다. 이는 그가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자 지금까지 사랑 받는 이유. 주 타겟인 여성 시청층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면서 마니아층을 확실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덕분에 작품은 내놓기만 하면 대박을 치고 있다.
최근 종영한 ‘태양의 후예’까지, 김은숙 작가는 남녀의 로맨스를 쫄깃하게 그려내는 극본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린 작품은 2004년 안방극장을 휩쓴 ‘파리의 연인’. 이 작품은 김은숙 작가만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준다. 까칠한 재벌 2세의 남자 주인공(박신양)이 힘겹게 살아가지만 밝고 당찬 여자 주인공(김정은)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변화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내는 것. 남자주인공은 모두에게 까칠하지만, 내 여자한테만큼은 친절한 ‘츤데레’라는 것이 특징이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나, ‘상속자들’의 이민호, ‘신사의 품격’ 장동건을 보라. 모두가 같은 맥락이다. 잘생긴데다가 능력이 있고, 사랑에 빠진 뒤에는 물불을 안 가린다. 당초 의사로 성정 돼 있던 ‘태양의 후예’ 송중기도 그냥 군인이 아닌 능력에 체력까지 갖춘 육사 출신 특전사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현실을 부정하려다 더욱 여 주인공에게 빠져들게 된다는 스토리 역시 공통적인 부분이고.
이걸로는 부족했는지 말까지 잘 한다. 김은숙 작가의 펜을 통해 만들어진 대사들은 배우들의 입에서 명대사로 탄생한다. 특징적인 것은 문법을 살짝 꼬아내는데, 아주 맛깔 난다. 김탄(이민호)의 ‘나 너 좋아하냐’, 윤수혁(이동건)의 ‘내 안에 너 있다’, 한기주(박신양)의 ‘애기야 가자’, 김주원(현빈) ‘그래서 나는 딱 미친놈이야’ 등이다. 이번 ‘태양의후예’에서도 송중기는 ‘말빨’ 좋은 군인이었다. ‘뭘 할까요?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라거나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내가’라며 주어를 뒤로 빼는 방식으로 임팩트를 더하는 대사로 ‘심쿵’을 유발한 것. 워낙 명대사가 많아 작품이 끝나면 어록이 탄생하기까지 한다.
이렇다보니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당연하게 스타덤에 오른다. 극본대로만 했을 뿐인데, 여심을 강하게 흔들어 놓는다. 박신양에게 ‘파리의 연인’은 아직도 대표작이고, 이민호 역시 ‘상속자들’로 한류를 이끄는 아시아의 별이 됐다. 현빈 또한 ‘시크릿가든’을 통해 주가를 무섭게 올렸고, ‘태양의후예’의 송중기는 신드롬을 만들어내기까지 한 바.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캐스팅도 신의 한 수다. ‘시크릿가든’의 현빈에게는 까칠하고 도도한 이미지에 코믹적인 요소를 더해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했고, ‘태양의 후예’ 송중기에게는 기존의 여리여리한 ‘밀크남’ 이미지에 남성스러움을 입혀 매력을 극대화 시켰다. 상대적으로 여 주인공보다 남 주인공이 스타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은 것 역시 주 타겟층이 여성이고, 여성들의 판타지를 강하게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남주인공이 해내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배우들이 김은숙 작가와 함께 작품을 하고 싶어 한다. 스타덤에 오를 수 있는 무서운 화력에 섬세한 필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 이제 막 ‘태양의후예’가 종영했는데, 이미 시청자들은 그의 차기작에 함께할 배우가 누구인지 벌써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는 배우 공유가 물망에 올라있다.
확실히 힘이 있는 작가다. 내놓는 드라마 마다 비슷한 인물 설정과 전개로 ‘자가복제’라는 말도 나오지만, 그럼에도 그가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은 여심을 제대로 읽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판타지를 만들어내고, 쉽게 따라갈 수 없는 특유의 필력으로 캐릭터를 맛깔나게 살려내기 때문이다. 이후 ‘태양의 후예’를 잇는 대작이 탄생할 수 있을지, 송중기를 잇는 김은숙의 남자는 누구일지 벌써 팬들의 기대와 관심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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