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개그콘서트’, 억지 진화와 정체 사이에서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4.18 14: 3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요일 밤의 절대 강자이자 개그 프로그램의 대명사였던 KBS2 ‘개그콘서트’가 변하고 있다. 워낙 장기 집권한 탓에 자신감이 지나쳐서인지 변화를 두려워하고 주변의 진언에 귀를 막은 채 고집불통으로 일관하던 제작방식이 바뀌어 언론과 접촉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변화를 꾀해온 ‘개콘’이 최근 새 단장으로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한자리 수 시청률은 반등의 기미가 엿보이지 않는다. 일부 매체는 이런 변화에 박수를 치며 격려해주기도 하지만 예전에 언론이 매질할 때 옹호해줬던 시청자들은 이젠 냉랭하다 못해 무관심할 지경이다.
지난 17일 공개된 새 코너 ‘클라이 막장’은 드라마 제작 현장 속의 ‘갑질’을 소재로 한, 자아비판적 정체성으로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한류스타 김대성은 사극을 찍고 있는 중인데 내일 중국에 가야하니 오늘 모든 촬영을 끝내달라고 감독에게 요구했다. 그러자 감독은 “하루에 50신을 어떻게 찍느냐”며 CF 촬영이 있냐고 물었고, 이에 김대성은 “중국에서 마사지 받을 예정”이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다. 영화 같은 경우 한 신을 하루에 다 못 찍을 때도 허다하다.

더불어 김대성은 자신이 광고 모델로 출연 중인 휴대전화를 사극 안에 꼭 넣어야 한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작가 조수연은 장금이 만든 삼계탕의 두 다리가 꼬여있다며 왕 앞에서 건방지다고 질책하는가 하면 신인배우 김나희가 인사를 하자 본체만체 무시하더니 그녀의 연기가 형편없다며 자신의 조카를 대신 그 배역에 캐스팅하려 했다. 절필을 선언한 대표적안 막장의 대명사로 알려진 작가를 꼬집었다.
요즘 드라마 자체가 인기와 화제를 동시에 몰고 다니고 있는 가운데 ‘태양의 후예’가 엄청난 블록버스터급 화제성을 터뜨린 이유 때문인지 ‘헐’ 코너 역시 ‘태양의 후예’를 패러디해 제작 현장의 부조리를 꼬집었다.
서태훈이 구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의 미녀 캐릭터를 맡은 김나희에게 드라이브를 제안하자 “드라마에서 진구가 운전하다가 김지원이랑 키스하던데 그럼 우리 키스하는 거야?”라고 묻는다. 그러자 서태훈은 “그거 다 PPL이야”라고 짜증을 낸다. ‘태양의 후예’ 속 자동차 간접광고 장면이다.
 
또 서태훈이 가자고 다그치자 김나희는 갑자기 북한 사투리로 “과자 하나 먹고 갈 시간은 되잖니”라고 여유를 부린다. 역시 ‘태양의 후예’에서 북한군 지승현이 북한으로 압송되기 전 초콜릿 과자를 먹던 장면의 PPL이다.
시청자들을 웃기겠다고 만든 이런 설정 등은 모두 현실이다. 적지 않은 스타들이 어긋난 자만심과 과한 우월감에 빠져 이기적이다 못해 매우 비상식적인 돌출행동을 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제작현장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불어 일부 스타 작가들이 마치 자신의 대본이 바이블이라도 되는 듯, 자신의 존재가 신이라도 되는 듯 드라마계에서 전횡을 저지르는 것 역시 관계자들이 숱하게 봐온 현실이다.
과도하고 엉뚱한 PPL이야 시청자들이 더 잘 안다.
그래서 이런 업계의 비리 혹은 형평성의 문제 등을 까발리고 풍자해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줌과 동시에 ‘갑’에게 경고하는 이런 기획은 매우 발전적이고 그래서 그 값어치가 꽤 빛난다. 더구나 같은 방송사의 최고 효자 상품 드라마를 비꼰 것 역시 그 가상한 용기를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이미 종영됐다. 검사가 ‘공소시효’를 넘긴 범인의 혐의를 잡겠다고 선언해봐야 법은 무능하고 대신 독립투사 같은 검사의 용기만 칭찬받을 따름이다. 결국 명분과 실리 모두 검사 혼자 챙기고 범인은 거리를 활보하며 또 다른 범죄를 모색한다. 둘은 공범에 다름 아니다.
‘개그콘서트’는 그동안 계속 추락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해학과 풍자가 사라졌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다. 오히려 민영방송인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과감하게 정권을 풍자했을 뿐 ‘개그콘서트’는 코미디의 정수인 정치풍자를 외면한 채 외모비하 같은 저질개그로 시청자의 높아진 수준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정체된 수준의 아이디어가 진화라고 우겨댔었다.
‘클라이 막장’이 바로 그런 수준의 연장선상에 있다. 드라마계의 비리는 SBS에서 ‘드라마의 제왕’(2012~2013)이 방송된 후 ‘개그콘서트’가 ‘시청률의 제왕’이란 코너를 통해 충분히 활용한 바 있다. ‘클라이 막장’은 그 확장판일 따름이다.
게다가 드라마계의 비리를 까발리는 것은 해당 업계의 건전한 발전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국민의 생활이 나아지거나 인권이 향상돼 기본적 인격권을 보장받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나름대로 풍자와 해학을 자랑할 순 있겠지만 감히 용기를 내세울 순 없다.
2달이 지난 ‘1대 1’ 역시 변죽만 울릴 뿐 보다 용감한 본질에의 접근에는 겁을 낸다.
“정상적이던 머리카락이 여러 가지 이유로 중간에 빠지게 되는 것”이란 질문에 이상훈은 “국의원”이라며 그 이유로 “선거 때만 되면 열심히 하겠다고 해놓고 감옥 가신다고 빠지고, 대권 도전한다고 빠지시고”라고 부연설명했다.
또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이란 질문에 “정부종합청사”라고 답하며 한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정부종합청사에 어렵지 않게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사건을 풍자했다.
그러나 ‘수위’는 그게 전부였다. 이내 이세진이 클루 조지니(조지 클루니), 구딱다리(딱따구리), 할타지마(타지마할)이란 오답을 내며 그냥 말장난 수준의 1차원적 구닥다리 개그의 향연을 펼쳤다. 더욱 한심한 것은 영화 ‘내부자들’의 안상구 분장을 하고 가슴에 이병원이란 이름표를 달고 시청자를 웃기려한 의도다.
병원이란 이름의 의도가 다분히 이병헌의 인격을 모독하는 소지가 엿보였고, 이제 화제성에서 멀어진 ‘내부자들’을 아직도 우려먹겠다는 안일함의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런 면에서 ‘개그콘서트’는 다분히 보수적인 형태를 보인다. 옛것을 배워 새것을 익혀간다는 온고지신이 아니라 오로지 과거의 향수에 집착해 정체돼있겠다는 매우 게으른 행태다.
‘넘사벽’은 이제 동력이 꺼진 채 과거청산 차원에서 역사박물관에서 전시나 돼야 할 소재인 조폭을 아직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렇게 안방극장에서 부모와 자식이 함께 개그 프로나 드라마에서 조폭을 접한다면 그들의 범죄행위와 사회적 악영향에 대한 우려와 경각심이 희석됨으로써 그들의 세포분열과 진화를 부채질한다는 책임감도 모른 채.
개그맨 장동민은 자신의 코디네이터, 군대 후임, 삼풍백화점 희생자 등 상대적 약자와 엄청난 피해자들을 비하하고 그들에게 언행의 쌍방향 폭력을 하거나 그랬던 걸 자랑삼아 떠들다가 큰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한 가정 아이들을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가 백척간두에 선 모양새다.
극빈자, 장애인, 전과자, 조직의 말단 지위자,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들을 놀리거나 그런 행위를 웃음거리로 삼는 행동은 위법 여부를 떠나 엄연한 폭력이다. 법과 상관없는 도덕적 사회적 인도적 차원의 범죄행위다. 그리고 그런 언행 등은 사회발전과 인간의 공통적 행복추구와는 전혀 다른 편에 서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개그를 해야 시청자의 묵은 체증이 내려갈 만한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고, 그런 카타르시스와 힐링이 문화를 발전시켜 국가를 선진형으로 만들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짐으로써 개그와 개그맨의 값어치가 소중해지는 것이다./osenstar@osen.co.kr
<사진>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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