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변호사 조들호’가 끝내 월화극 왕좌를 차지하게 된 데는 실제로 일어났거나 일어날 법한 사건들을 시원하게 풀어내는 비현실적 영웅의 등장이 컸다. 그러나 제 아무리 시청자들에게 ‘동네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박신양이라지만 드라마에서도 현실의 벽은 높았다.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사이다’ 전개를 선물하기까지는 그의 능력도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2TV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는 아동학대로 둔갑해버린 유치원 급식비리 사건을 해결하려 애쓰는 조들호 변호사 사무실 식구들의 고군분투가 전파를 타며 보는 이들에게 공감과 분노를 함께 안겼다.
유치원 교사 배효진(송지인 분)은 원생들에게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싸구려 식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어 주는 원장의 만행을 폭로하려다 되려 함정에 빠졌다.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원장의 계략으로 원생 중 한 명을 학대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수임하게 된 조들호(박신양 분)는 이혼하며 떨어져 살게 된 딸 수빈을 떠올리며 배효진의 억울함을 풀어 주려 했다.
사실은 배효진에게 학대를 당한 것이 아니라 쓰레기죽을 먹고 배앓이를 하게 됐을 뿐인 가련한 꼬마의 사연을 알게 된 조들호와 이은조(강소라 분)는 이들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진실은 의외로 힘이 없었다. 아이 엄마는 이 사건으로 유치원이 타격을 입게 되면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워도 부조리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조들호는 배효진의 동료 교사들에게 증언을 부탁하려 하지만 이조차도 녹록치 않았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혹여라도 소속 유치원에 해를 끼치는 선생이라는 소문이 퍼져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될까 두려워 하는 이들에게는 침묵 말고 답이 없었다. 결정적 증인들의 마음은 정의나 진실 따위의 달달한 가치보다는 현실적 생활을 향해 있었다.
게다가 배효진은 조들호 사무실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배대수(박원상 분)의 친동생이었다. 전직 조직 폭력배였던 그는 동생마저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자 “차라리 합의를 보겠다”며 눈물짓는다. 없는 죄를 인정하겠다는 굴복이다.
하지만 조들호 변호사 사무실 식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유치원에 위장 취업을 해서 증거를 수집하는데 매진했다. 끝내 입을 열지 않는 증인들에게 “침묵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일갈하는가 하면, 원장의 생일파티에 모인 학부모들 앞에서 아이들이 먹던 쓰레기죽을 내놓으며 은폐됐던 사실을 낱낱이 까발렸다. 이들의 진심 어린 노력에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들호가 잡아낸 승기는 짜릿함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씁쓸한 뒷맛도 남겼다. 진실은 한없이 연약해서 만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조들호조차도 끝의 끝까지 고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탓이다. ‘사람에게 쓰레기죽을 먹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아이라면 더더욱’이라는 당연한 명제가 현실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조들호가 소리 없이 외친 침묵 퍼포먼스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절절히 울렸다. 그의 말처럼 침묵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드라마 속에서나마 쉽게 ‘사이다’를 마실 수 있는 현실은 이 적막을 깬 후라야 가능하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동네변호사 조들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