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받는 성적표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얼마나 높은 시청률을 받았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화제가 됐느냐, 그리고 얼마나 의미 있는 드라마가 됐느냐 등이다. 화제성은 시청률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미 있는 드라마라는 평가에는 반드시 높은 시청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즉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느냐가 여기선 중요한 요소. 이처럼 여러 번 곱씹을수록 더 와 닿고, 마음속에 깊숙이 간직하고 싶은 작품을 ‘인생작’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삶을 담으며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노희경 작가가 있다. -편집자주-
노희경은 우리의 삶에 집중하는 작가다. 그래서 로망을 대신 실현해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사색적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불편한 드라마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담백한 문체의 명대사로 공감을 얻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단 한 편 꼽는 최고의 작품이 되곤 한다.
그는 지난 1995년 단막극을 통해 방송가에 데뷔해 꾸준히 작품을 쓰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작품에는 그녀의 페르소나가 등장하기 마련이었고, 작가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지금은 노희경 사단에 당당히 첫 번째 이름을 올릴 배종옥이 바로 대표적인 페르소나다. 두 사람의 인연은 ‘거짓말’(1998)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 ‘바보 같은 사랑’(2000), ‘화려한 시절’(2001), ‘꽃보다 아름다워’(2004) 등 대부분 등장하는 주인공은 우리네 삶을 닮은 현실적인 인물이 많았다. 30~40%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등 메가톤급의 히트를 달성하지 않았어도 그녀의 글 스타일은 인기에 휩쓸리지 않는 뚝심이 있다.
그렇게 노희경은 평생 소장하고픈 드라마를 만들며 그녀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방송계에 구축했다. 시청률로 재단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작가가 아닐까. 앞선 작품도 물론 훌륭한 것이 많았지만 노희경의 소위 ‘글빨’이 살아있는 작품으로 많은 이들이 ‘굿바이 솔로’(2006)를 꼽는다. 극중 인물을 통해 발화되는 대사들은 명언처럼 작품은 보지 않은 이들도 사로잡을 만큼 힘이 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에는 작품 속 내레이션은 노희경만의 스타일이 됐다. 그는 사람의 심리를 예리하게 잡아내 담백하게 푸는 재주가 뛰어나다. 인간적으로 작품 속 캐릭터를 이해하고 공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희경 작품을 보면 정말 저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물이 처한 상황은 달라도 삶 그 자체를 그려냈다는 점은 모두 동일하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들이 사는 세상’(2008), 판타지 요소를 결합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기적 같은 사랑이야기를 다룬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2011), 눈이 보이지 않는 돈 많은 여자와 그 여자의 오빠 행세를 하다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몸이 아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괜찮아 사랑이야’(2014)까지 깊게 빠져들게 하는 명품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아무리 비현실적인 소재나 상황을 그린다 해도 노희경이 하면 다른 이유는 궁극적으로 삶에 관련해 질문하기 때문.
캐릭터가 모두 살아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녀의 작품 속 여성은 늘 주체적이다. 그래서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는 없다. 또한 심리적으로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캐릭터가 많아 아픈 손가락 같은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이러니 ‘노희경 마니아’를 모을 수밖에. 내달에는 출연진들의 연령대를 확 높인 ‘디어 마이 프렌즈’로 누군가에게 또 한 편의 인생작을 선사할 예정이다. / besodam@osen.co.kr
[사진] OSEN DB, '괜찮아, 사랑이야',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