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는 ‘배역에 따라 달라지는 얼굴’이라는 말보다 더 듣기 좋은 칭찬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배우 천우희에게는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가 그런 칭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충무로에서 천우희의 등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영화 ‘마더’(2009)에서 진태(진구 분) 여자친구 미나를 기억하는가. 비중은 적었으나 인상은 강렬했던 캐릭터였다. 그런데 미나는 소위 천우희가 뜬 이후에 가서 다시 주목받았다. 당시 ‘천우희가 진구 여자친구였어?’라던 놀라운 반응이었다. 그만큼 배우보다 먼저 캐릭터를 각인시켰던 천우희다.
이후 천우희는 ‘써니’(2011)에서 상미로 주목을 받으면서 충무로에서 주목할 신예 여배우로 떠올랐다. 껄렁껄렁한 ‘일진’ 연기도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그 당시만 해도 천우희는 정말 소싯적 껌 좀 씹어본 언니 같았으니까.
강렬한 한방은 아직 더 남아있다. 바로 ‘한공주’(2013)다. 청룡의 여인으로 만든 이 작품에서 천우희는 집단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한공주 역을 연기했다. 건조한 눈빛과 말투로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던 그녀의 모습은 오열하는 것보다 더욱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다.
충무로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천우희는 남다른 행보를 이어갔다. 배역의 비중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구축했다. ‘카트’(2014)에서는 번번이 취직에 실패하는 취업준비생 미진을 연기했고, ‘손님’(2015)에서는 과부이자 강압에 못 이겨 무당이 된 미숙으로 살았다. 무려 17살 차이의 류승룡과의 애틋한 러브라인도 척척 해냈다.
그러더니 ‘여여케미’도 해냈다. ‘뷰티 인사이드’(2015)에서 수많은 우진 중 한 명을 맡아 이수(한효주 분)와 관계를 진척해나가는 중추적인 신을 담당했다. 엔딩에서는 ‘뽀뽀신’까지 선보였는데, 대단한 연기 열정이 아닐 수 없다. 한효주와는 올해 ‘해어화’(4월 13일 개봉)를 통해 다시 만났다. 극중 두 사람은 함께 예인의 길로 걸어 나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다. 지금까지 천우희는 작품에서 단벌로 출연한 것은 물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사실. ‘해어화’에서는 지금까지 모습 중 가장 해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배우 스스로도 예쁜 옷을 실컷 입어 본 것 자체만으로도 기쁨을 표현할 정도.
천우희가 펼쳐나갈 앞으로의 필모그래피도 범상치 않다. ‘추격자’(2008)와 ‘황해’(2010)를 연출한 스릴러의 거장 나홍진 감독이 6년 만에 선보이는 ‘곡성’(2016)이다. 동시에 멜로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윤기 김독의 ‘마이엔젤’(2016)도 선보일 예정. 스릴러와 멜로라니 극과 극 연기를 선보이게 된 셈이다. ‘천의 얼굴’ 수식어가 역시 아깝지 않다. / besodam@osen.co.kr
[사진] OSEN DB, '한공주', '카트', '손님', '해어화', '곡성'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