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개그맨 이창명(47)의 교통사고는 뚜렷한 피해자가 있는 것도,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도 아니지만 ‘사건’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경찰이 그를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창명은 엄밀히 구분하자면 공인은 아니지만 대중에게 거의 공인의 ‘대접’을 받는 유명 연예인이다. 사건을 일으켰으면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사건 경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 그는 ‘해명’은 있되, 명쾌한 해결이 없고, 사과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에는 아직 궁금증이 존재한다. 그는 그걸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는 20일 오후 11시30분께 포르쉐 SUV 카이엔을 운전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횡단보도에 있는 신호등을 들이받았다. 허나 웬일인지 그는 금세 사라졌고, 얼마 뒤 사고현장에 나타난 경찰은 운전자가 이창명이었음을 알고 그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이창명은 21시간이 지난 21일 오후 8시10분께 영등포경찰서에 출석했다.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빗길에 미끄러져 에어백이 터질 정도로 세게 부딪쳤고 가슴이 매우 아파 휴대전화로 지인을 불러 수습을 맡긴 뒤 인근 병원에 가서 컴퓨터단층촬영을 했다”고 경위를 밝혔다. 더불어 그는 강한 의혹을 사고 있던 음주운전 여부에 대해 “술을 못마신다”고 방점을 찍었다.
더불어 휴대전화가 불통이었고, 잠적한 데 대해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데 대전에 중요한 투자 관련 약속이 있어서 내려갔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어서 이렇게 일이 커진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4시간쯤 조사했고, 음주 운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채혈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2~3일 뒤 나온다.
하지만 어딘지 명쾌하지 않다. 우선 포르셰 카이엔이다. 이 차의 가격은 약 1억8000만 원이다. 그가 얼마나 부자고, 통이 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크게 다치고 차에 연기가 날 정도로 큰 사고였다면 상식적으로 당장 사고 수습과 수리가 우선이지 않을까.
그는 사고가 나자마자 친동생과 다름없는 전 소속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수습을 맡긴 뒤 병원에 들렀다가 곧바로 대전으로 내려갔다고 취재진에 밝혔다. 그렇다면 약속이 새벽에 있거나 최대한 뒤로 늘려도 조찬모임이었다는 추측이다.
아무리 투자자라 해도 서울에 사는 이창명에게 아침을 먹자고 대전으로 부른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정황이다. 이창명은 사고 당시 "아주 중요한 투자 유치 건이라 대전으로 내려가던 중"이었다고 했다.이해는 가지만 사고를 낸 다음에 장시간 이를 방치한 이유로는 조금 부족하다.
그는 연예인이자 이렇게 중요한 투자유치를 앞둔 사업가다. 그렇게 바쁘며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거나 보조 배터리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 역시 비상식적이다. 대부분 오너들은 차량에 충전기를 상비해두기 마련이다. 그렇게 중요한 투자를 앞둔 사람이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방치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21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해서도 그는 해명해야 한다. 그렇게 바쁘게 대전으로 내려가야 했다면 가자마자 투자자를 만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만난 뒤에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유선전화를 이용해서라도 ‘친동생’ 같은 ‘대리인’에게 사고 수습 진행상황을 물었을 것이고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했을 텐데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경찰서에 출두했다.
그는 사고 직후 현장을 떠난 이유로 “차에 불이 날까 봐”와 “너무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 가기 위해”라고 해명했다. 그의 말대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나니 별로 심각하지 않아서 대전으로 갔다고 치자. 그 전에 차에 불이 났는지, 안 났는지, 현장 수습은 어떻게 됐는지 병원 전화로라도 물어보는 게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이창명이 사고 직전 대전으로 가는 길이었다면 음주운전이 아닌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또 본인도 술은 전혀 못마신다고 했다. 사실이건 아니건 사고 뒤 21시간 뒤의 채혈검사는 무의미하다. 술을 못마시는 체질인만큼 사고 후 병원에 갔을 때 채혈이라도 해뒀다면 불필요한 음주운전 오해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창명의 해명이 모두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대중에게 보다 더 명확한 사건의 세세한 진술과 더불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KBS 보도국이나 교양국도 그냥 쉽게 넘어갈 일만한 사건은 아닌 듯 보인다. 이창명은 KBS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했고, 누가 뭐래도 오늘날의 이창명이란 연예인을 탄탄하게 만들어준 프로그램은 현재진행형인 ‘출발 드림팀’이란 사실을 외면하는 자충수는 후에 KBS란 공영방송 조직에 날카로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인기 연예인이란 지위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초석을 다지지만 결국 대중의 지지로 완성되고 대중의 성원으로 보수, 유지되기 마련이다. 그런 ‘준 공인’의 도덕성의 동맥경화는 방송가 질서의 전신마비로 이어지고, 문화계의 혼돈을 유발함으로써, 사회적 가치의 카오스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