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희생하는 인간적인 아버지는 아닌데 왠지 모르게 짠하고 애틋하다. 표독스러움에 가득 찬 살기 어린 눈빛과 고함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전노민에게서 전혀 다른 연기 농도와 완급 조절을 발견했다. 전노민이 악한 아버지로서 ‘기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가족애를 그린 드라마 ‘기억’에서 전노민이 연기하는 이찬무는 비열하고 이기적인 아버지다. 파렴치하고 악한 면모가 도드라진 이유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 아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아들의 죄를 숨기려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부정적인 면이 강조된 다중적 성격의 아버지는 그간 영화 및 드라마에서 자주 만났던 캐릭터다. 결함 많은 성격의 아버지와 그에게 맞선 아들과의 갈등을 통해 ‘기억’은 어긋난 부성애를 말한다. 작가 김지우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가족 이외의 사람을 업신여기는 매정한 아버지로 이찬무를 그리고 있다.
지난 22일 방송된 tvN 금토극 ‘기억’(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 11회에서 찬무는 아들 승호(여회현)의 죄를 덮기 위해 강현욱(신재하)이 자살한 것으로 꾸몄다. 이에 박태석(이성민)은 진실을 캐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사실 태석은 현욱이 죽기 전까지 그가 자신의 아들을 죽게 만든 범인이라고 의심했다. 현욱의 몽타주를 이찬무에게 내밀며 직접 잡아넣겠다고 단언했을 정도. 하지만 죄책감이 없던 그가 돌연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자살 사건은 찬무가 꾸민 일로,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아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처리했다. 하지만 현욱의 손목에 남긴 상처가 자살한 게 아니었음을 알리고 있다.
전노민은 아들에 대한 비뚤어진 애착을 가진 아버지상을 열연해 보인다. 아들의 잘못을 감싸주기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아들을 향한 사랑이 지나치게 강한 캐릭터이다.
전노민은 로펌 대표 변호사로서의 엘리트 의식과 자만함, 그러면서도 한국남자의 뚝배기 같은 진솔함, 아버지의 외로움과 자책감 등 복잡한 인물을 열연으로 표현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탓에 차츰 기억을 잃는 박태석 역의 이성민과 악한 아버지 찬무 역의 전노민을 집중해서 보는 게 ‘기억’을 시청하는 재미다./ purplish@osen.co.kr
[사진]‘신서유기2’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