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라미란의 이미지는 코믹하고, 능청스러우며, 가끔은 ‘쎄다’. 2005년 데뷔한 후 수많은 작품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들이 대개 그런 모습이었던 탓이다. 알 만한 사람만 알던 라미란을 20년 만에 대중의 뇌리에 제대로 각인시켜 준 tvN ‘응답하라 1988’에서도 그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 ‘치타 여사’의 카리스마로 안방극장을 찾아 갔었다.
지난 22일 방송된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라미란은 전혀 ‘쎈 언니’가 아니었다. 생애 첫 예능 고정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1화부터 모두를 압도했던 그로부터 회를 거듭할 수록 색다른 매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감춰져 있던 여성미는 물론이고, 동생들이 뭐라 하든 오냐오냐 받아 주는 순둥한 언니의 모습이 엿보였다.
이날 라미란은 봄맞이 MT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제시, 김숙과 더불어 차에 올랐다. 그는 제시의 거친 운전 솜씨와 특유의 ‘쎈’ 말투에도 ‘보살 미소’를 지으며 하나하나 대꾸해줬다. 다소 불편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 걱정됐지만, 라미란의 조근조근한 말투는 보는 이들이 편안하게 느껴질 만큼 분위기를 중화시켰다. 제시의 천방지축 이미지를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데 라미란 만한 공신은 없었다.
제시와의 찰떡 호흡은 이어진 메이크오버 시간에도 빛을 발했다. 할리우드 배우 루시 리우처럼 만들어 주겠다는 제시의 호언장담을 듣고 있는 라미란의 표정은 옆에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려무나’라고 적힌 말풍선이 떠 있는 듯 인자했다.
눈썹 산을 살려주겠다는 제시가 “이 언니 눈썹 엉망진창이다”라며 건넨 농담에도 조신한 말투로 “내 눈썹이 그렇게 엉망진창이냐”고 되물으니 분위기가 나빠질 틈이 없었다.머리카락이 뽑힐 기세로 거칠었던 드라이도 한 번 버럭 성을 내지 않은 라미란이었다. 메이크오버가 완성된 후에는 “나 미쿡 사람 같아요?”라며 소녀스런 모습을 보여 주기도.
‘혼밥(혼자 밥먹기)’ 도전에서는 예능 초짜의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라미란에게는 ‘혼밥’ 체험 중임을 알리는 패널부터 카메라까지 손에 들려졌을 뿐만 아니라 ‘이 장면에선 이렇게 촬영해 달라’는 미션도 함께 주어졌다. 정신이 하나도 없을 상황에서 라미란은 식당 전경을 찍고, 음식이 나올 때마다 찍고, 맛 평가에 인터뷰까지 해냈다. 분량은 다 나왔을 법도 한데 음식의 모양이 바뀌는 순간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혼밥’에 성공한 후에는 남은 음식 포장을 부탁한 후 “멤버들 다 같이 먹었으면 더 맛있었겠다”며 순둥한 언니의 면모를 맘껏 뽐냈다.
티파니의 놀이공원 함께 즐기기 소원에 바이킹에 올랐으나 막상 무서움에 불참을 선언하고 만 김숙을 향해 원성이 쏟아졌을 때도 라미란의 진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동생들과 함께 김숙을 타박하다가도 “우리 이렇게 다섯 명이서 숙이 둘러싸는 거냐”며 금세 동갑내기 친구에게 어깨동무를 한 라미란의 모습이 훈훈했다.
그동안 라미란의 얼굴에서 익숙한‘치타 여사’만을 읽었다면,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통해 조금이나마 ‘진짜 라미란’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 ‘진짜 라미란’에게 자꾸만 정이 가는 것은, 라미란이 멤버들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 덕일 것이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언니들의 슬램덩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