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어들인 까닭은 무엇일까. 이미 정평이 난 연출자와 작가, 화려한 화면, 정제된 대사 등 제작진의 노력을 꼽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변호사 역에 배우 이성민을 캐스팅한 것이 성공의 비결로 보인다.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으나, 변호사 박태석의 심리를 밀도 있게 표현한 이성민의 빛나는 열연이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시청자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공했지만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 태석 역을 맡은 이성민은 지난 23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기억’(극본 김지우, 연출 박찬홍)에서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날 태석은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진범을 잡을 때까지 기억력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강현욱(신재하)이 범인일 것이라고 추측했으나 돌연 자살했다는 소식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태석과 정진(준호)은 여러 가지 정황상 현욱이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 믿게 됐다. 그러나 이승호(여회현)의 거짓 자백을 받고 혼란이 가중됐다. 태석이 승호를 찾아가 진실 해명을 요구했으나, 승호는 현욱이 뺑소니 사고에 대한 죄책감과 아버지의 빚으로 사채업자들의 협박을 받아 자살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승호는 찬무(전노민)가 현욱을 없앴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 받았으나 이내 아버지를 따라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는 위선자로 변모해나갔다. 죄를 숨기기 위해 태석에게 거짓 고백을 하기로 결심한 것. 하지만 이날 태석이 찬무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됐고, 향후 증거 수집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규명할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이성민의 연기력이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성민은 기억력 감퇴에 주변 사람들의 압박을 받는 태석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주름으로 그의 심경을 표현하는 속내 묘사가 탁월했던 것이다. 이성민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에 시청자들의 가슴까지 먹먹해졌다.
아들을 촉촉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대견한 표정을 지을 때, 찬무에 대한 진실을 알고 사무실에 들어가 오열할 때 등 미묘한 표정 연기는 일품이었다.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 이성민의 자세는 그 자체로도 높이 평가될 만하다./ purplish@osen.co.kr
[사진] ‘기억’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