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이 당연한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유재석이다. 고정 패널은 물론, 단발성으로 출연한 게스트까지 모든 정보를 꿰고 진행을 하니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느끼듯, ‘무한도전’부터 ‘슈가맨’까지 1990년대 문화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지난 26일 방송된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하 슈가맨)에는 각각 1993년과 2003년을 풍미했던 철이와 미애, 바나나걸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Mnet ‘프로듀스 101’을 통해 결성된 걸그룹 I.O.I가 데뷔 후 첫 걸음마를 떼는 자리도 마련됐다.
유재석은 I.O.I의 등장과 함께 국민MC의 체면 따위는 제쳐두고 삼촌팬으로 변신했다. 방송에서 공개됐던 김세정, 전소미, 최유정의 별명이며 특징을 일일이 읊어가며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완전체로 무대에 오른 I.O.I의 ‘픽 미’ 첫 무대에서는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짚어내며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이를 지켜 보던 MC 유희열은 “광기 어린 중년 남성을 봤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유재석 덕에 스튜디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슈가맨’들에 대한 열광 역시 엄청났다. 원체 출연진에 대한 정보를 갖고 방송에 임하는 스타일인데다가 댄스곡에 조예가 깊은 유재석에게는 최고의 회차였다. 특히 과거 그가 방송에서도 많이 선보였던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는 자신의 인생 주제곡이라고 칭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유희열 역시 철이와 미애를 소개하기 전 “유재석씨는 이 분들이 나오면 울 것 같다”고 말해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이어 등장한 바나나걸 앞에서도 유재석은 댄스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어릴 적 나이트클럽에 온 듯 몸사리지 않는 광란의 춤으로 ‘엉덩이’ 무대에 감칠맛을 더했다. 노래를 부르는 이도, 보고 듣는 이도 흥이 나지 않을 리 만무했다.
이처럼 유재석은 온몸으로 ‘슈가맨’들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당시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데도 능력을 불태웠다.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 대본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한들, 이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할 진행 솜씨였다. 오늘과 더불어 지나간 시대에 빛을 비추는 유재석, 그를 누구든지 춤추게 할 수 있는 MC라 부름이 아깝지 않았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슈가맨’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