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이신성은 복수를 삶의 목표로 세운 테러범이었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순하디 순한 청년이었다. 인터뷰 초반에는 처음 만난 기자를 경계하는 듯 낯을 가리더니, 곧 시간이 흘러 익숙해졌음에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부끄러움과 긴장감이 역력했다. 근데 연기를 할 때는 어쩜 그렇게 달라지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부드러운 이미지에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잘 봤다”고 칭찬하자 “감사하다. 저는 작가님이 써주신 대로, 감독님이 지시한 대로 했을 뿐”이라며 샐쭉 웃었다.
“단순히 살인마라는 생각보다 이 사람의 입장에서 악을 처단한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수경은 정당성이 있는 거죠. 하지만 능숙하게 살인하기보다 감성적으로 다가갔고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오로지 복수를 위해 배우고 준비한 사람이라고 해석했어요. 정수경이 사이코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이신성은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13년 전 뉴타운 재개발 사건 피해자의 유가족으로 복수형 범죄를 저지르는 정수경 역을 맡았다.
“대본에 있는 감정대로 쫓아갔어요. 수경이 누나를 잃고 복수를 위해 살지만 어떤 시점에 이르자 그의 살인에 정당성이 안 느껴지더라고요. 악몽도 꾸고, 트라우마도 생겼다는 점에서요. 복수심과 어긋나게 죽인적도 있었고. 점점 복수의 의미를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 연기를 위해 액션팀에 지도를 받았다는 그는 “권투하는 장면이 있다고 들어서 촬영 한 달 전부터 트레이닝을 받았다. 근데 막상 권투 장면은 안 나왔다”며 “하지만 연기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큰 도움을 받았다. 액션을 찍을 때는 사고가 날 것을 대비해 대역이 계신데 그 분들이 하는 걸 제가 다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웬만해서는 다 소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수경은 친형처럼 따르던 윤희성(유준상 분)의 손에 처참히 살해당했다. 그의 명령을 어기고 여명하(조윤희 분)를 살해하려고 했기 때문. 종영 전에 떠나 아쉬운 점이 없느냐고 묻자 “당연히 아쉬웠다”며 “정수경이라는 사람은 과거에 운동선수로서 열심히 살았다. 테러리스트가 돼 비극적인 상황을 맞았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반성하고 밝았던 과거로 돌아가길 바랐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같은 소속사 식구이자 선배인 유준상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신성은 “현장에서 시너지를 내는 선배님이다. 평소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저는 중간부터 나오는 역할이었고, 다른 사람의 대사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를 주셔서 ‘희성의 오른팔 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해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신성은 인상 깊었던 장면에 대해 첫 등장했던 7회를 꼽으며 “음성변조 된 목소리였지만 수경의 대사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재방송으로 또 봤는데도 좋았다. 그 사람의 입장이 느껴졌다. 이런 대사를 해볼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이다. 작가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감사하다”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강조했다.
이신성은 지난 2004년 뮤지컬 ‘터널’을 통해 데뷔했다. 고교 시절 우연치 않게 연극을 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고. 이후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데뷔한 지 13년 차에 접어든 이신성은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고 생각한다.
“저는 아직 신인이다. 여유 있는 삶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운동을 하거나 계발의 시간을 갖는다. 이번에도 킥복싱을 배우고 있었는데 권투 선수 역을 맡았다. 미리 도장을 다녀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웃음) 스타가 되길 바라기보다 건강한 인간으로 남고 싶다. 여러 모로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부족한데 자신 있게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purplis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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