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보면 사람을 안다? 때로는 위대한 적이 상대의 가치를 증명하는 법이다. 배우 천정명이 조재현이라는 위대한 배우를 만나, 그에 눌리지 않는 기(氣)와 연기력을 보여주며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어쩌면 그에게 이 작품은 '인생작'이 될 지도 모르겠다.
지난 27일 첫 방송된 KBS 2TV 새 수목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극본 채승대 연출 김종연 임세준)에서는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김길도(조재현 분)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살아가는 무명(천정명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린 시절 무명은 머리를 다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와 함께 산 속에서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산에서 낙마 사고를 당해 신원을 알 수 없었던 그의 아버지는 사실 하정태라는 사람으로 궁중꿩국수를 집요하게 연구하던 국수 전문가였다.
하정태가 사고를 당한 것은 김길도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하정태는 산 속에서 굶주린 채 돌아다니던 김길도를 구해줬고, 그에게 국수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김길도는 살인 용의자인 자신의 정체를 하정태가 눈치채자, 절벽에서 일을 하던 하정태의 줄을 끊어버리고 도망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정태의 것으로 신분 세탁했다. 이후 김길도는 하정태로 변신, 유명 국수명가인 치면식당의 사위로 들어가 궁락원이라는 커다란 가게를 운영하게 됐다.
그러나 하정태는 죽지 않았고, 살아나 무명을 낳았다. 이를 발견한 김길도는 어느 날 밤 하정태 가족의 집에 불을 질러 일가족을 살해하려 했다. 거기서 몰래 빠져나와 목숨을 건진 하정태의 아들 순석이 바로 무명이었다.
이 드라마의 본질은 복수극이다. 그러나 국수라는 독특한 소재가 더해지면서 보는 이들에게 흥미를 줬다. 조재현은 영화 '리플리'의 주인공처럼 양심의 거리낌없이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모습을 여러 존재로 위장하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거기에는 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바로의 공도 적지 않다. 또 이 과정을 감각적으로 연출한 점은 드라마의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
무명 역을 맡은 천정명은 드라마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며 주인공으로서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김길도의 가게를 찾아 그를 관찰하며 "또 올게. 너 죽이러"라고 독백하는 모습은 앞으로의 내용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줄 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간 천정명은 다양한 작품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극을 이끌어 왔지만, 이번 드라마는 시작부터 뿜어내는 기운이 남달랐다. 과연 천정명의 '인생작'은 이 드라마를 통해 경신될까? 기대감을 모은다. /eujenej@osen.co.kr
[사진] '국수의 신'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