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쌍문동 골목은 이제 드라마 세트장으로밖에 만날 수 없다. 자꾸만 변하려는 세월의 힘은 무엇보다 강해서, 그때의 우리는 아무것도 막을 수 없었다. 단골 커피숍이 사라진다는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데, 조건 없는 애정을 바쳤던 존재가 돌연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한 시련이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우리 앞에 다시 한 번 그 시절이 재현됐다.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시즌2’(이하 토토가2) 특집에 등장한 젝스키스를 통해서다. 이들의 팬이 아니더라도 ‘우리’로 묶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감수성을 공유한 사람들, 그리고 이에 새로이 매력을 느끼게 된 사람들 모두가 프로그램이 진행된 3주 동안만은 ‘우리’가 됐다. 좁은 의미로는 ‘젝스키스 열풍’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문화적 반동의 조류로 보더라도 옳은 해석일 듯하다.
‘토토가2’와 젝키에 쏟아지는 폭발적 관심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대한 향수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그리움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진 채널과 아이돌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단 하나의 무언가에 열중하던 시절에 대한 추억도 있을 것이다.
또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주체하지 못 할 만큼의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과 달리 발로 뛰지 않으면 안 됐던 당시에 부었던 열정들이 다시 생각나기도 할 터다. 지금에 비하면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 수준의 ‘팬질’이었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공중전화에 달려가 152-2580을 눌러 들은 음성을 또 들었고, 모시는 오빠들의 모습이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에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까지 방 한 켠을 그득 채웠다.
‘아이돌 1세대’인 젝키가 오랜 팬들을 소환하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팬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데도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세대’라는 수식이 의미하는 것은 ‘최초’와 동시에 이전이 없음이기도 하다. 멤버 수가 수이니 만큼 랩이나 보컬, 댄스 등의 파트를 나눴다지만 이들의 캐릭터성과 관계성까지 기획의 대상은 아니었다. 어떠한 주문 없이 날것 그대로 대중 앞에 나온 아이돌들은 천연의 매력으로 승부해야 했다. 팬들은 TV와 라디오에 나온 이들의 모습만을 가지고 부단히도 매력 발굴에 나섰다. 관계성은 팬픽이라는 콘텐츠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룹 내 담당 분야가 나노 단위로 쪼개지는 요즘 아이돌의 기획 과정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들은 1세대 아이돌을 흥행시켰던 포인트들을 짚어 다양하게 재해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돌들이 어떻게든 팬덤을 형성해내니, 이들의 원조 격인 1세대 아이돌들 역시 당연히 지금도 통할 수밖에.
상기했듯 젝키가 소환한 것은 그저 향수로 뭉뚱그리기 아까운 다채로운 그리움이었다. 16년 만에 돌아온 이들은 현대까지도 아우르는 또 다른 기억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단 3주, 젝키의 등장이 남긴 것들은 뭉근하게 끓여낸 사골국의 맛처럼 몹시도 진했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OSEN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