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KBS 2TV ‘나를 돌아봐’는 초반 장동민의 막말 후유증, 조영남과 김수미의 불화, 최민수의 스태프 폭행 등 숱한 악재를 겪으며 연예인의 매니저 역할로 역지사지의 교훈을 주겠다는 애초의 건전한 의도에 어긋나는 불협화음의 빈약한 연주력으로 멤버의 고정탈락과 프로그램 폐지의 압박을 받았었다.
하지만 방송 초반의 온갖 구설수를 뚫고 지나온 ‘나를 돌아봐’는 공영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매우 교과서적이면서도 깊은 공감의 웃음을 주는 재미로 포장됐다. 결국 초반 논란의 후유증을 못 이기고 조기 종영되는 아픔을 겪게됐지만 , 멤버 초이스부터 활용법까지 작가와 제작진의 진지한 고뇌와 결단이 단연 돋보였다.
지난 2월 12일 '나를 돌아봐' 방송분을 리뷰하는 것으로 종영사를 대신할까 한다. 이날 출연한 멤버는 90살의 송해를 필두로 57살의 이경규, GOD의 박준형, 박명수, 조우종 아나운서, 그리고 갓세븐의 23살 먹은 잭슨이었다. 할아버지-아버지-삼촌-아들의 3대가 출연했지만 절대 어색하지 않고 매우 질서정연한 호흡을 보였으며, 그 속에서 억지스러운 캐릭터 설정이나 지나치게 의도된 연출이 아닌, 절제됐으나 결코 점잖은 모습으로 돋보이려는 치장 없이 매우 자연스러운 재미를 매끄럽게 창조해냈다.
멤버들은 해변 백사장에서 삭풍과 싸워가며 해병대 교관으로부터 혹한기 단합훈련을 받았다. PT체조부터 타이어 끌기, 그물 통과하기 등을 통해 추위와 싸우며 협동심을 보여줬다. 여기에 MBC ‘진짜 사나이’ 같은 혹독한 고문예능은 없었다. 고령의 송해를 적절히 배려했고, 그 속에서도 송해는 혜택과 책임을 적절히 분배해 이름값과 나잇값을 충분히 해냈다.
뭣보다 돋보인 것은 평소와 다른 이경규와 박명수의 제 역할이었다. 평소 신경질적이고 자기고집이 강한 비타협의 대명사로서 캐릭터를 설정해온 두 사람이 만나니 오히려 온화하고 아기자기해졌다.
이경규는 박명수의 매니저 역할이었다. 1990년대 MBC 예능의 전성기를 이끈 이경규와 당시 아직 한참 성장해야 할 ‘막내’ 개그맨이었던 박명수로 치자면 두 사람은 ‘하늘’과 ‘땅’이다. 그래서 이경규는 수시로 본분을 잊고 박명수를 막 부리려 했고, 그럴 때마다 박명수가 ‘이 실장’이라고 호통을 치며 현실로 복귀시키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포맷과 안성맞춤의 재미를 줬다.
박준형은 이제 예능인이 다 됐다. 짜장면 내기가 걸린 신용카드 배치의 주도권을 다투는 팔씨름에서 이경규는 온힘을 다해 송해를 이겼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박준형을 만났고, 누가 봐도 박준형의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됐지만 그는 일부러 져줬다. 반전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머지 멤버들의 이경규를 향한 무시무시(?)한 테러가 이어졌다. 선배 이경규에게 ‘대선배 송해에게 그렇게 이기고 싶었냐’고 후배들이 따지는 하극상에 대한 하극상이었다.
이들은 배달된 짜장면마저도 예능으로 승화시켰다. 매니저가 눈을 가리고 연예인에게 짜장면을 먹여준 뒤 얼굴이 제일 깨끗한 팀이 이기는 내기를 벌이며 다수의 시청자들이 공감할 예능을 창출해냈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은 사실 시청자의 피부에 깊게 와 닿기 쉽지 않지만 이것은 시청자들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내기여서 재미가 컸던 것. 모르긴 몰라도 이날 이 시각 영업을 하는 중국집이 있었다면 전화에 불이 났을 것이다./osenstar@osen.co.kr
<사진> '나를 돌아봐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