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연예인이라면 배우 가수 개그맨(코미디언)에 때론 모델까지 포함하는 게 상식적이었지만 이제 예능인이란 새로운 전문직을 집어넣어야 할 판이다. 예전엔 시청자를 웃기는 직군이 코미디언이라고 해서 가수들의 무대 전환 시 생기는 막간에 등장하거나 오락 프로그램의 감초로서 시청자를 즐겁게 해줬고, 더 나아가 아예 코미디 전문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직업이 있었다.
그런데 이 오락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의 개그맨은 물론 배우 가수 모델 등 다양한 전직을 가진 연예인들이 재치와 입담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풍성하게 해주는 가운데 셰프와 더불어 예전의 스포츠 스타가 예능인의 중심에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현재로선 안정환이 가장 두드러지고, 그 뒤를 이천수가 잇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은 왜 예능인이 되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강호동 이전까지만 해도 스포츠맨과 연예인은 극단의 이미지였다. 더구나 예능인과 체육인은 상극에 가까웠다. 개그맨은 무조건 시청자를 웃기는 연기를 해야 하지만 체육인은 진지하게 승리를 목적으로 땀을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체육인에게 최소한 경기에서만큼은 가식이나 연기는 있을 수 없다.
과학이 지배하는 요즘은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이 요구되지만 그래도 운동은 머리보다는 몸의 능력이 앞선다는 게 진리다. 훈련에 의한 실력도, 선천적인 운동신경도 그래서 중요하다.
개그맨에게도 선천적인 재치가 필요하긴 하지만 모든 것은 연기다. 배삼룡과 심형래는 바보가 아니라 바보 연기를 잘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강호동은 천하장사 출신이고, 안정환은 강적 이탈리아를 꺾은 주인공이다. 안정환의 경우 공이 둥글기 때문에 구기종목에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이변 혹은 행운을 어느 정도 들먹일 수도 있었지만 남다른 실력이 없었다면 그런 결과를 만들어낼 순 없었다.
어쨌든 스포츠 스타는 예능 제작진에게는 군침이 도는 출연자다. 20세기 들어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와 수입이 수직상승하는 가운데 프로스포츠의 활성화 및 운동선수의 몸값의 급상승으로 운동선수도 연예인과 동일선상의 스타가 됐다. 21세기에 그 심화현상이 더욱 강해진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TV 영화 등의 대중매체 입장에선 스포츠 스타의 기본적인 인터뷰부터 그들의 다큐멘터리, 더 나아가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의 출연은 상업성과 연관되므로 마다할 리 없게 됐다.
그건 운동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 스포츠에서 활동하는 선수나 코칭 스태프는 자신의 유명세와 인기도가 곧 연봉으로 직결되므로 이미지가 손상되는 기획이 아닌 한 출연 제안을 마다할 리 없다.
김연아의 예에서 보듯 굳이 예능에 고정출연하지 않더라도 방송출연을 통해 인기도를 높일 경우 연간 100억 원대의 CF에 출연할 정도로 큰돈도 벌 수 있다. 손해 볼 게 없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연예인에겐 정년이 없지만 운동선수에겐 젊음이 사라지는 순간 퇴직해야 하는 ‘정년퇴직’이 있다. 나이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개인경기의 경우 점점 패배의 숫자가 많아질 때, 단체경기의 경우 주전 자리를 후배에게 내주는 일이 빈번해질 때가 바로 퇴임 시기다.
선수라는 이름을 벗은 뒤 그들이 할 수 있는 정규코스는 지도자다. 그런데 그 자리는 많지 않고, 프로 등 굵직한 팀의 감독이 아니라면 현역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적은 수입을 감수해야 한다. 예외가 있으니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스타 출신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두드러지는 지도자 자리는 물론 해당 경기의 방송사 해설위원 자리가 있고, 그런 연유로 방송과 자주 접하다보면 예능감을 기를 수 있다면 갈 길이 많다.
양준혁이 먼저 열었고, 안정환이 바통을 이어받았으며, 이천수가 그 흐름에 합류 중이다.
그건 주 종목이 연기건 노래건 코미디건 따지지 않고 봐서 즐거우면 고만인 시청자의 ‘니즈’에 맞아떨어진다. 어떤 맥락에선 만날 그렇고 그런 식상한 얼굴만 마주하는 데 질린 시청자들이 평소 진지한 태도에 피지컬적인 능력만 보여 온 운동선수가 의외로 허술한 면모를 보이고, 다른 방송인들에게 놀림을 받는 생경한 시퀀스를 연출하는 데서 신선한 즐거움을 얻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호동의 경우 아예 대놓고 개그맨으로서의 변신을 선언한 채 시작했다. 스포츠 세계에서 군기가 세기로 치면 우리나라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경직된 체제 하에서 강호동의 개그맨 변신 선언은 혁명이자 반란이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그만큼 그는 운동선수 중에서도 단연 흐름을 읽는 센스가 뛰어났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앞섰던 것이다.
강호동이 이런 적극적인 자의적 선택이었다면 안정환과 이천수는 자연스러운 시류와의 영합이었다. ‘자의 반’과 ‘타의 반’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것이다.
안정환은 축구스타 중 보기 드문 미남으로서 전성기 때 연예인 뺨칠 정도로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다. 이천수는 현역시절 일련의 구설수로 악동 이미지가 강했으며 MBC ‘복면가왕’에서 입증한 가창력에서 보듯 ‘끼’가 넘쳐흐름을 이미 알렸다.
스포츠 스타가 예능에서 활동할 때 좋은 점은 많다. 그 중에서 단연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운동과 달리 혹독하고 지난한 연습이 비교적 쉬운 리허설 정도라는 것이고, 대신 그에 따른 수입은 일반 노동자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물론 박광덕은 강호동과 결과가 달랐고, 최홍만은 예능 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누비는가 하면 음반을 내기도 하고 일본 영화에 출연하는 등 문어발식 활동을 펼쳤지만 결국 이도저도 안 돼 리턴하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라고 다 예능인이 될 수 없다는 증거다.
한때 권투선수로 전향했던 미키 루크나 격투기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개그맨 윤형빈이 있긴 하지만 연예인이 스포츠계에서 크게 성공한 예는 없다. 예능은 끼만으로 하루아침에 진입할 수 있지만 운동은 몇 달, 몇 년 트레이닝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예능은 스포츠보단 예술에 가깝다. 안정환이 축구선수보단 장발의 반지의 제왕으로써 여자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이천수가 ‘축구보다 악동 짓을 더 잘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은 그들이 이례적으로 피지컬 재능과 예술적 끼를 동시에 타고 났기 때문은 아닐까? 샅바의 제왕에서 예능의 늦둥이로서 성장하는 데 시청자들이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줬지만 그 응원을 외면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쓴맛을 본 이만기와 다른 점이다. 프로야구 중계 때 수많은 전직 프로야구 스타가 등장하지만 예능인 배출은 쉽지 않은 이유와도 같은 맥락이다./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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