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지난달 30일 시작된 MBC 창사 55주년 기념 대하 사극 ‘옥중화’(김종학프로덕션 제작)가 17.3%의 높은 시청률로 단숨에 동시간대 1위에 뛰어오른 데 이어 2회 20%를 찍으며 50부작까지의 긴 여정을 힘차게 출발했다.
시청자들은 대부분 찬사를 쏟아내며 향후 전개될 스토리에 기대감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있다. 제작진은 최완규 작가와 이병훈 PD를 의식한 듯 ‘대장금’을 뛰어넘는 새로운 한류열풍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큰소리를 친 상태. 하지만 배부른 첫술에 뿌듯해 앞으로 내내 포만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안심하기엔 아직은 시기상조다.
주인공은 감옥인 전옥서에서 태어난 고아 옥녀(진세연)와 정난정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쫓겨난 윤원형의 서자로서 서울 상권을 장악한 한양상단과 왈패조직 그리고 오늘날의 변호사 조직인 외지부를 운영하는 태원(고수)이다.
타이틀롤인 옥녀가 실질적인 주인공으로서 그녀는 전옥서에서 파란만장한 사연을 지닌 각종 죄수(?)들과 교류하며 사소한 범죄부터 해박한 법 지식은 물론 사주팔자 관상 등 세상의 모든 학식과 잡식을 모두 섭렵하는 인물이다. 사림파의 거목 조광조(전광렬)부터 이지함(주진모), 임꺽정, 황진이, 전우치, 대장금 등의 도움을 받게 된다.
중종의 세 번째 왕비로서 인종을 독살하고 자신의 아들 명종을 왕위에 올린 악녀 문정황후(김미숙)와 그런 누나의 권세를 등에 업고 소윤세력을 이끌며 정권을 잡는 윤원형(정준호), 그리고 기생 출신으로 원형의 정실 자리에까지 오르는 정난정(박주미)이 주인공들과 대척점에 선 악의 축이다.
드라마는 원형이 보낸 자객에게 옥녀의 어머니 가비(배그린)가 쫓기면서는 시작된다. 자객에게 칼을 맞은 가비는 절체절명의 순간 전옥서의 서리 지천득(정은표)에게 애원한 끝에 몸을 숨기고 옥녀를 출산하지만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천득은 옥에서 태어났다고 신생아에게 옥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여자 수감자들에게 젖동냥을 하며 키워 15년이 흐른다.
전옥서의 다모로 살아가는 옥녀(아역, 정다빈)는 남달리 총명하고 인정이 많아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국대전을 줄줄 외우고 수감된 이지함으로부터 관상을 배워 이미 뛰어난 대송인(변호사)이자 관상가가 돼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원형이 전옥서에 행차한다. 이유는 자신이 정권을 잡을 수 있을지 알고 싶어서 이지함에게 관상을 봐달라는 것. 원형 앞에 끌려온 지함은 자신은 별로 능력이 없고 대신 뛰어난 관상가가 있다며 옥녀를 부른다.
재치 있는 옥녀는 입에 발린 거짓 사주풀이로 원형과 난정의 환심을 사고 비단까지 하사받지만 원형의 딸로 오인한 화적패들에게 납치당해 살해당할 위기를 맞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드디어 운명적으로 태원과 만난다.
요즘 드라마들이 이종교배를 통해 퓨전화하는 양상이 짙은 데다 눈길을 끌 만한 카메오를 히든카드가 아닌, 상습적 상술로 활용하는 데 반해 ‘옥중화’는 비교적 정석의 길을 걷는다.
시작하자마자 중국영화 ‘와호장룡’과 ‘연인’(장쯔이 류더화 진청우 주연)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나무 숲 검술 신 등은 확실히 드라마치곤 꽤 봐줄만 했다. 전형적인 드라마 성공의 상투인 ‘1회 시작 5분의 임팩트 법칙’이다. 게다가 3000평 규모라는 대규모 세트장은 이 제작사의 예전 작품인 이민호 김희선 주연의 ‘신의’에서 봤던 스케일과 확연하게 구분돼 흠잡을 데가 없다. 게다가 화려한 의상 등 미술 및 소품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부은 게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확연해 눈이 즐겁다.
하지만 베테랑 이 PD가 연출하는 이 대하 사극의 산전수전 다 겪은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다. 특히 극의 중심이 되는 박주미부터 예능까지 넘나드는 김응수, 새로 부임한 전옥서 주부 정대식 역의 다소 새로운 얼굴 최민철까지 연극으로 착각할 정도로 과장된 액션과 감정, 그리고 목소리 톤 연기를 펼친다. 한마디로 경기가 시작하자마 선수들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더구나 2회에서 바로 박주미의 목욕 신으로 중장년 남자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하는 말초신경 자극 요법을 펼친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1회의 정공법이 반칙을 위한 위장술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나마 시청자들의 눈에 환한 미소를 짓게 만든 것은 바로 옥녀의 아역을 맡은 정다빈의 상큼한 이미지와 어색하지 않은 연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옥녀 혹은 그녀 자체의 매력이었다. 지옥과 다름없다는 감옥에서 고아로 태어나 자랐지만 어두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죄수들에게 편견을 갖지 않으며, 완벽에 가까운 인성을 갖고 성장한 영민하고 기특하며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한 몸에 간직한 듯한 옥녀라는 캐릭터를 이 어린 배우가 영특하게 첫 단추부터 잘 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문제다. 벌써부터 인터넷 댓글에는 본격적으로 성인 옥녀를 연기할 진세연에 대한 우려와 섣부른 판단이 넘실댄다. 당연히 아직 검증이 안 된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불만이다.
MBC가 앞서 이병훈 PD에게 메가폰을 쥐어주고 대작으로 만든 ‘마의’의 여주인공이 이요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엇갈렸던 점까지 지적하는 날카로운 시청자까지 나올 정도다.
심지어 매 작품마다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정준호마저 ‘두사부일체’ 톤이란 지적까지 받을 정도다. 연출의 의도건 배우의 과욕이건 전체 연기의 톤이 들떠있는 데다 타이틀롤을 40여 회 이끌어갈 진세연의 연기력에 대한 우려마저 겹쳐지는 것.
물론 이 모든 기대와 의구심이 그만큼 시청자들의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크다는 증거이긴 하다. ‘태양의 후예’ 때문에 상대적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꼈을 남자 시청자들은 특히 그렇다. 전통적으로 역사드라마는 30대 이상의 남자들이 좋아한다. 여자를 타이틀롤로 한 사극 역시 ‘대장금’ 이후 꽤 오랜만의 기대작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옥녀는 앞으로 인권에 관한한 허점투성이인 조선시대의 변호사가 돼 법에 반기를 든 게 아니라 국민의 보편적 행복을 거스르는 관습과 과욕과 편견에 반항하는 인본주의적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초반에 등장한 인물들 중 상당수가 과잉된 감정을 지닌 불완전한 영혼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그건 과유불급(과하면 미치지 못하느니만 못함)과 불급중용(중용에도 못 미침)의 공존이 우려된다는 의미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옥중화'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