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이야기는 부부만 안다. 최고의 여배우로 신성일과 결혼해서 평생 온갖 마음고생을 하며 살다가 80이 넘은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 쇠약해진 엄앵란 부부의 사연은 가슴 아팠다. 신성일이 부부의 도를 저버리고 엄앵란에게 준 상처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렇기에 뒤늦게 함께 살고자 노력하는 신성일의 모습이 좋게만 보이지 않았다.
지난 2일 오후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랑’에서는 신성일과 엄앵란 부부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엄앵란은 유방암 수술 이후 극도로 쇠약해진 몸으로 힘겹게 하루하루 버텨나갔고 신성일은 그런 엄앵란을 뒤늦게 보살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 부부가 떨어져 살아온 40년은 긴 세월이었다.
엄앵란은 한평생 신성일을 위해서 살았다. 신성일은 국회의원 3번 출마, 사는 아파트 담보로 영화 제작, 외도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전부 다 하면 살았다. 엄앵란은 그런 신성일의 뒷바라지를 해왔고 80이 넘은 나이에 남은 것은 병든 몸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직도 병든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며 은수저를 내오라고 호령하고 시시콜콜한 잔소리하는 신성일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성일은 젊은 시절 하지 않았던 엄앵란에 대한 칭찬과 스킨십을 계속해서 시도했고 타고난 로맨티스트로 애정 넘치는 말들을 해줬다. 뒤늦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내를 책임지겠다는 뜻을 진심으로 밝혔다. 그렇지만 이런 신성일의 태도가 조금 불편했던 것은 젊은 시절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성일은 자신이 저지른 외도를 상세하게 담은 자서전을 2011년 출간한 뒤에 이날 방송에서 처음으로 엄앵란에게 사과했다. 물론 신성일은 진심을 담아서 사과했겠지만, 여배우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참고 살아온 엄앵란에게는 큰 상처였을 것이다. 엄앵란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그런 아버지를 쉽게 용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엄앵란도 뒤늦게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신성일에 대해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엄앵란은 “나갈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들어 올 때는 아니다”라며 “그게 사람 사는 예의다”라고 신성일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결국, 엄앵란은 방송 끝까지 신성일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부부의 정은 평생을 함께 살면서 서로에 대한 의리와 사랑을 지켜오는 것이지 40년간 별거한 뒤에 한쪽이 한쪽을 용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것은 또 한 번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pps2014@osen.co.kr
[사진] '휴먼다큐 사랑'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