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전우치’와 ‘각시탈’ 이후로 끊겼던 ‘한국형 히어로’의 명맥을 잇는 캐릭터가 등장했습니다. 영화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의 홍길동이 그 주인공이죠. 조선 중기 허균이 썼던 ‘홍길동전’의 주인공이 1980년대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에 소환됐는데요. 최근 tvN ‘시그널’로 군 전역 후 제대로 복귀 신호탄을 터뜨린 이제훈이 홍길동으로 변신했습니다.
영화 속 홍길동(이제훈 분)은 불법 흥신소 활빈당의 수장인 탐정으로 재해석됐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예스런 소품들도 많이 나오는데, 구식 무전기가 대표적입니다. 공교롭게도 홍길동 역을 맡은 이제훈은 ‘시그널’에서도 무전기로 과거의 남자 이재한(조진웅 분)과 소통을 합니다.
지난 25일 열린 ‘탐정 홍길동’의 기자 간담회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제훈은 “영화를 먼저 찍고 나서 드라마에 들어갔는데, 막상 당시에는 공통점을 느끼지 못했다”며 “영화와 드라마가 모두 마무리된 후 후반 작업할 때가 돼서야 두 작품에서 모두 무전기를 사용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그런 장면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마치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며 “‘시그널’을 보신 분들은 ‘홍길동’도 반겨 주시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죠. 보는 이들도 흥미로웠는데, 본인의 입장에서도 각기 다른 작품에서 연기한 캐릭터의 공통점을 만나는 것이 퍽 즐거웠을 듯합니다.
‘시그널’과 ‘탐정 홍길동’의 닮은 점은 또 있습니다. 주연의 내레이션이 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인데요. 두 작품 모두 이제훈의 대사량이 상당했습니다. 그는 “홍길동이 저음에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말투를 썼다면, ‘시그널’의 박해영은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말을 한다”고 같은 듯 다른 두 캐릭터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홍길동이 개인적 복수를 위해 암암리에 활약했다면 박해영은 사건 해결을 하기 위해 뛰어다녔다는 말도 덧붙였죠.
이처럼 유사한 부분이 많은 인물을 깊이 연구해서 차이점을 뽑아내는 자세가 훌륭하네요. 홍길동을 연기할 때 참고한 캐릭터가 있는가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 속으로 깊이 천착해 탄생한 캐릭터가 홍길동이었다네요. 역점을 둔 부분은 관객들이 홍길동에게 호기심이 들게 하고, 사랑하게 할 수 있을지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탐정 홍길동’과 비교 선상에 오른 것은 상반기 마지막 대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이하 시빌 워)였습니다. 개봉 시기가 일주일 가량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의식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이제훈은 “‘시빌 워’에는 인류와 세상을 구하려는 신념을 가진 영웅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탐정 홍길동’에는 탈이념적 인물이고 개인적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인물이 나온다”며 자못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국적 슈퍼 히어로에 대적하는 ‘한국형 히어로’의 첫 걸음은 과연 어떤 반응을 얻을까요? ‘탐정 홍길동’은 다음달 4일 개봉됩니다./osen@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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