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2001년 개봉돼 4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로맨틱코미디의 ‘전설’이 된 ‘엽기적인 그녀’(곽재용 감독)의 속편 ‘엽기적인 그녀 2’(조근식 감독, 리틀빅픽처스 배급)가 15년 만에 개봉된다.
전편을 제작한 신씨네가 중국 자본을 받아 제작한 데서 알 수 있듯 전편은 중국에서 호평을 얻었고, 현재 차태현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f(x)의 빅토리아가 중국 출신의 한류스타인 점이 이 영화가 노리는 흥행 포인트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전편에서 극적으로 견우(차태현)과 재회해 해피엔딩을 보여줬던 긴 생머리의 그녀(전지현)는 돌연 비구니가 돼 사라진다.
어느덧 30대 중반(1982년 생)이 된 견우는 이자카야에서 셰프가 서비스로 준 다코야키를 보고 그녀의 둥근 민머리가 떠올라 술잔에 눈물을 쏟을 정도로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더불어 지방대학 출신의 그는 아직도 취업이 안 돼 이래저래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계속된 적자 가계부였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온 그는 실연의 아픔이 더 큰지, 미취업에 의한 자괴감과 불안한 미래 그리고 현실의 경제난이 주는 고통이 더 큰지 가늠할 여유조차 없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살았었다. 지질하고 외롭던 그의 삶에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오니 그것은 쿵푸 사범인 화교의 조카딸 그녀(빅토리아)가 부모를 여의고 삼촌의 집으로 온 것.
부모가 하늘나라의 별이라고 생각하는 그녀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은 하늘을 쳐다보고 부모와 대화하는 것. 평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견우는 그들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도와주다가 난로를 넘어뜨리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감쌌다가 난로 주의 팻말인 ‘손대지 말 것’이란 글씨를 그녀와 함께 ‘사랑의 징표’로 손에 아로새기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서로에게 첫사랑이 된다. 그렇게 추억을 쌓던 어느 날 그녀는 견우에게 “너는 운명이 정해준 내 남편”이라고 고백한 뒤 자신이 먼저 별나라로 가서 부모를 만날 테니 자신을 꼭 찾아오라며 ‘워 아이 니(나는 너를 사랑해)’가 바로 그런 뜻이라고 거짓(쑥스러움에)으로 말한 뒤 할아버지가 사는 중국 윈난성 소수민족 마을로 떠났다.
다시 현재. 어머니(송옥숙) 문안차 병원을 찾은 견우는 갑자기 등 뒤에서 “존만아”라고 초등학교 시절 자신의 별명을 부르는 외침을 듣고는 모골이 송연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병원을 헤맨다. 그리고 꿈처럼 그의 앞에 첫사랑 그녀가 나타난다.
여전히 견우를 ‘운명적인 남편’으로 믿는 그녀는 이젠 결혼식을 올리자고 조르고 견우는 이 믿지 못할 행운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왜냐면 그는 백수. 하지만 빅토리아는 일단 결혼부터 하자고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착한 일을 하면 취업이 될 것이라며 견우와 봉사활동에 나선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대형 이동통신사에서 합격했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달한다.
이제 견우에겐 ‘고생 끝, 행복 시작’의 꿈결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그녀는 매일 세계 각국의 부부 코스프레를 펼치며 견우에게 쾌락과 행복의 절정을 선사하고, 견우는 입사동기 용섭(배성우)과 쟁쟁한 일류대 출신 사원들 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회사의 대우가 수상쩍다. 사실 그들은 정부의 지방대학 출신 사원 채용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게 입사시킨 ‘개구멍 사원’이었다. 회장의 애완견이 문 이력서의 주인공들.
회사는 그 ‘개만도 못한’ 사원들을 압박해 줄줄이 자진퇴사 하게끔 만들고 드디어 용섭이 사표를 던진 뒤 사옥 정문 앞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시위를 벌인다. 그동안 견우는 폭군보다 더 악랄한 김 전무(최진호)에게 굴복하고 운전기사란 직책에 사실상 노예 노릇을 하며 어떻게든 회사에서 살아남으려 노력 중이다.
견우는 김 전무의 부름에 그가 주최한 연회장에서 고기를 굽고 용섭은 여기에 처들어와 김 전무를 만나려 하다가 경호원들에게 저지당한다. 그러자 그녀가 나타나 현란한 무술솜씨로 경호원들을 물리치지만 이 와중에 김 전무가 큰 사고로 창피를 당하고 견우는 당연히 해고된다.
견우는 그녀를 심하게 나무라며 그동안 그녀의 웃음을 지켜주기 위해 힘들게 노력해왔지만 그녀의 철없는 행동으로 인해 모든 게 끝났고, 이제 자신은 더 이상 그녀를 위해 애쓸 수 없다고 외친다. 그렇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파국을 맞게 된다.
로맨틱코미디는 장르영화 중 가장 정확한 공식을 준수한다. 남녀의 우연한 만남(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기(승), 갈등으로 인한 이별(전), 재회 후 해피엔딩(결)이다. ‘엽기적인 그녀 2’ 역시 이 형식에 충실하고 전편처럼 그녀의 엽기적인 행동과 우물쭈물하고 어리바리한 견우의 모자람을 강조해 웃음의 무기로 전면배치한다.
조 감독은 ‘품행제로’로 데뷔했다. ‘엽기적인 그녀 2’는 ‘품행제로’의 속편이기도 하다. ‘품행제로’가 ‘양아치’ 같은 주먹의 전설 중필(류승범)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엽기적인 그녀 2’는 중국인이고 쿵푸 사범 삼촌을 둬서 무술실력이 출중하고 거친 성격인 그녀를 앞세워 만화적 장치를 총동원해 하이틴보단 로우틴에 더 어울릴 듯한 귀여운 프레임을 구성한다.
말보다 발이 앞서는 육탄돌격형 그녀의 액션 혹은 견우 길들이기 장면 역시 그런 차원에서 동일선상에 위치한다.
영화는 단순히 로맨틱코미디에 집중하기보단 거창하게 청년실업문제와 더불어 대기업의 횡포, 혹은 가진 자의 ‘갑질’을 화두로 떠올려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가 하면 그녀의 할아버지인 나시족 어른의 입을 통해 인생의 철학까지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무려 15년이나 걸린, 혹은 10여년이 지나 속편을 기획하게 된 고민과 고뇌의 흔적과 상처는 역력하다. 이제 애 엄마가 된 전지현을 더 이상 기용할 수도 없고, 전지현 역시 출연을 거부할 것이 뻔한 상황 속에서 빅토리아라는 썩 괜찮은 중국용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이해하지만 아직은 동안이라는 뻔뻔스러운 자신감으로 차태현에게서 15년 전의 견우를 찾으라는 요구는 관객을 기망하는 모독행위다. 실제 1972년생인 배성우를 1982년생 용섭으로 캐스팅한 것은 소소한 재미를 위한 설정이었다는 납득이 가능하지만 1976년생인 차태현을 아직도 견우라고 우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이유는 영화가 가진 매력적인 특성 중 하나인 판타지 때문이다.
전지현을 비구니로 만든 시작부터 영화의 억지는 이미 전편에 걸쳐 널려있음을 예고하는 고해성사와 다름없다. 회장의 애완견이 신입사원을 뽑고, 그들을 회사가 억지로 밀어내며, 여기에서 그녀가 육탄전을 펼치는 시퀀스는 ‘화양연화’ 패러디 등 소소한 웃음과 재미를 이끌어내는 흥행적 요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몰입도와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큰 핸디캡이다.
결정적인 결함은 로맨틱코미디의 뼈대인 사랑에 대한 이유와 진지함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멜로는 인생에 대한 절망과 비관이 종내 공상과 환상의 세계로 확장됨으로써 신비주의 세계로 나아가는 비극이거나(‘해피 투게더’ ‘동사서독’ ‘아비정전’) 아니면 그 판타지가 현실화됨으로써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하다’는 주제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로맨틱코미디는 여기에 코미디적 요소가 군데군데 배치된다.
그런데 ‘엽기적인 그녀 ’2에 코미디는 있지만 사랑이 없다. 견우의 엄마가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스크린은 재미있지만 그 이유는 관객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며 견우가 그녀에게 지쳐야하는 시퀀스는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하루 만에 견우가 마음이 변해 그녀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고작 ‘워 아이 니’라는 점은 헛웃음도 웃음이라 생각하는 착각이 아닌지 의심된다.
그녀(빅토리아)는 그녀(전지현)보다 사랑스러울지 몰라도 덜 엽기적이고, 견우는 15년 전과 다름없이 허점투성이지만 예전처럼 귀엽진 않다. 일본의 미녀배우 후지이 미나는 왜 들러리를 섰는지 의문이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관객이라면 눈치를 채겠지만 이 영화는 중국 자본의, 중국 관객을 위한, 중국 시스템의 영화다. ‘별에서 온 그대’나 ‘태양의 후예’에 한국과 중국 시청자가 모두 열광한다고 양국민의 취향이 전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이런 허점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의 영화 데뷔는 성공적이다. 이 영화는 오로지 빅토리아의 매력을 어떻게 하면 돋보이게 만들까 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15세 이상 관람 가. 12일 개봉./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