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SBS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이하 ‘판타스틱 듀오’)는 MBC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의 견고한 아성을 침략할 수 있을까?
시청률을 떠나 매 시즌 화제가 만발하는 ‘K팝스타5’가 끝나고 재편된 ‘일요일이 좋다’는 MBC ‘일밤’의 1부에 전면배치돼 순항 중인 ‘복면가왕’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던지고 ‘판타스틱 듀오’를 지난달 17일부터 동시간대에 내보내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는 2009년 Mnet의 ‘슈퍼스타K’다. 그리고 이듬해 MBC가 ‘위대한 탄생’을 론칭했지만 별로 재미를 못 보자 슬그머니 폐지한 데 반해 SBS는 2011년 누가 봐도 뒷북치기라 우려스러웠던 ‘K팝스타’를 시작했지만 현재로선 가장 탄탄한 마니아층을 거느린 효자상품으로 키웠다.
‘판타스틱 듀오’ 역시 ‘K팝스타’처럼 흉내 내기라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MBC가 ‘듀엣가요제’를 내놓은 후 9일 뒤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런 기획이 9일 만에 후다닥 방송으로 현실화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긴 하지만 어쨌든 편성의 시기가 늦기에 베끼기의 의혹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정면에서 맞붙은 가요 대결 프로그램이란 같은 포맷의 라이벌 ‘복면가왕’의 두 자리 수 시청률의 절반인 6% 안팎에서 숨을 헐떡이는 모양새다. 판박이인 ‘듀엣 가요제’와의 차별화도 절실하다.
두 프로그램의 다른 점과 비슷한 점은 뭘까? 향후 판도는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복면가왕’은 시청자로 하여금 가면 속 주인공이 누구일지 궁금증을 키우고 그 결과에 놀라게 만든다는 가장 큰 장점 하나만큼은 최강이다. ‘판타스틱 듀오’가 그 어떤 실력파 가수나 재야의 숨은 아마추어 고수를 섭외해도 이것 하나만큼은 깨뜨릴 수 없는 철의 장벽이다.
‘판타스틱 듀오’는 ‘복면가왕’만큼의 충격파는 아니지만 ‘K팝스타’의 강점인 영재발굴이라는 의외의 신선한 변수가 돋보인다. 이선희 변진섭 조성모 등 추억의 가수를 불러 그들의 히트곡을 재현한다는 점은 ‘무한도전-토토가’와 다를 바 없어 식상하지만 엑소를 한 자리에 불러 자연스레 비교되게 함으로써 아이돌그룹의 음악에 익숙한 요즘 시청자들에게 비교적 음악의 완성도에 접근하려 했던 예전의 가요를 새삼스레 알려줌으로써 가사 멜로디 편곡 가창 등이 잘 어우러진 가요가 시청자의 감정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판타스틱 듀오’가 ‘복면가왕’과 가장 차별화되는 강점은 연출과 편집이다. ‘복면가왕’에 비해 훨씬 많은 게스트가 카메라에 잡힐 정도로 숫자로 밀어붙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사는 짧고 반응은 과하지 않다. ‘복면가왕’에서 경연자의 노래 과정에서 연예인 판정단의 얼굴을 지나치게 자주 인서트로 삽입하고, 그럴 때마다 판정단은 ‘놀랍다’ ‘감동했다’ 등의 감정을 과장된 표정과 액션으로 표현하는 유치한 연출을 보이는 것과 확실히 다르다.
두 프로그램 모두 개그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판이하게 달랐다. ‘복면가왕’의 이윤석 등은 지나치게 아는 체하며 말이 많고 가식적이고 과잉된 반응의 액션을 보이는 데 반해 ‘판타스틱 듀오’의 김지민은 말이 짧았고, 조영구 등은 아예 한마디도 없었다. 인해전술인데 산만하지 않다.
‘복면가왕’이 경연자가 그만큼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의도로 인서트를 남발한 편집을 좋아하지만 사실 그게 몰입을 방해하는 데 반해 ‘판타스틱 듀오’는 비교적 경연자의 무대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확연하게 보여 무대를 즐기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경쟁력이다.
더불어 무대 또한 ‘복면가왕’이 비교적 보수적인 데코레이션과 심플한 스포트라이트(핀 조명)에 국한되는 데 비교해 ‘판타스틱 듀오’의 무대는 매우 진취적이다. ‘전국노래자랑’과 클럽의 차이 같다.
하지만 음악 자체만 놓고 본다면 ‘판타스틱 듀오’는 아직 가야할 길이 꽤 멀다.
먼저 사운드 면에서 ‘복면가왕’은 각 악기를 잘 살리고 보컬을 앞세우거나 뒤로 뺄 줄 아는 실력을 지녔다. ‘복면가왕’의 음악은 풍부하고 세밀하지만 ‘판타스틱 듀오’의 음악은 모든 악기소리가 묻혀있고, 보컬 파트만 날카롭게 뚫고나오는 양상이다.
출연진이 자화자찬할 정도로 ‘판타스틱 듀오’ 제작진은 세션맨 진용에 대한 자부심이 강할지 몰라도 이름값과 음악성은 다르듯 아직은 ‘복면가왕’이 음악 자체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은 확실하다. 세션맨들의 연주 실력의 단순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편곡에 대한 ‘복면가왕’의 노력만큼은 세션맨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몰라도 귀가 먼저 안다.
‘복면가왕’의 경연자는 당연히 가수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그리고 그동안 대중이 몰랐던 그들의 또 다른 숨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이 취입한 적이 없는 노래를 선곡한다. 이 점이 가면 뒤의 실제 얼굴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재미를 키우고,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음악성과 실력에 놀라며, 가면을 벗었을 때의 놀라움이 큰 재미로 바뀌게 만든다.
그러나 ‘판타스틱 듀오’는 그냥 추억의 되새김질에 불과하다. 지난 8일 경연을 펼친 조성모 변진섭 이선희 엑소 등이 각각 아마추어 도전자와 함께 부른 그들의 히트곡은 엑소의 노래만 처음으로 오리지널 인스터러먼트(생악기)의 배경 아래 라이브로 들려줬다는 점에서 차별화됐지만 나머진 으레 그렇게 불렀고, 그렇게 들었던 설정이었다.
물론 ‘복면가왕’은 노래 발 부르는 비가수 연예인의 장기자랑과 재기를 꿈꾸는 왕년의 인기가수의 재활무대의 성격을 살짝 띤다는 점에선 재미와 실망의 혼돈이라는 함정이 도사린다. 이에 반해 ‘판타스틱 듀오’는 왕년의 인기가수의 히트곡을 훨씬 성숙한 가창력(이선희)과 전에 없는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다(조성모)는 점에서 순수할 뿐만 아니라, 가수를 꿈꾸는 실력파 아마추어들에게 상금과 희망을 주는 사회공헌적 기능을 지녀 아름답다.
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률과 롱런의 성공을 잡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캐스팅이다. ‘판타스틱 듀오’는 복면이란 미스터리가 가진 ‘복면가왕’의 포맷은 영원히 뛰어넘을 수 없겠지만 캐스팅과 더불어 선곡과 편곡에 조금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면 최소한 엇비슷하게는 갈 수 있다. 그 이유는 음악 자체는 몇 시간짜리 드라마나 영화를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비교는 불가하지만 완성하고 돋보이게 만드는 또 다른 독립된 콘텐츠로서의 존재감과 힘을 지녔다는 것 만큼은 당연하기 때문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sbs, 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