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원 연예레터]'곡성' 황정민, 왜 또냐고 묻거든...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5.14 08: 20

다작도 흠이 되는 시대인가. '이미지가 소비된다'고 했다. '요즘 너무 자주 나온다'며 배우의 마음을 꼬집었다. '혼자 다 해먹냐'고 시샘하는 건 차라리 선플이다. '그 나물에 그 비빔밥 연기'라는 악플이 가장 큰 상처였다. 매 영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목숨 걸고 사는 배우에게는.
"또 황정민이냐"고 묻거든, "'곡성'을 보시라"고 권한다. '곡성'의 주연은 황정민이 아니다. 곽도원이다. 대다수 관객들은 당연히 "황정민이 주연 아냐" 생각했겠지만 선입견이다. 황정민은 조연이다. 그리고 최근 수 년 새, '황정민 전성시대'로 표현해도 좋을 만큼 그의 출연작들이 연속 흥행에 성공하고 줄줄이 이어졌지만 진짜 원톱 주연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가장 잘 나가는 캐스팅 0순위 톱스타가 다작을 하는 전례도 드물었지만,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한 사례는 유일무이하다. 
배우를 천직으로 삼은 황정민의 인생관은 간단하다. 배우는 연기에 충실하고 열심히 하면서 부지런해야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출연 제의에 감사하고 끊임없이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에 기뻐하는 배우다. 자신의 인기와 몸값, 지명도가 치솟았다고 해서 이것저것 따지며 작품을 고르거나 CF 등으로 손쉽게 한 몫 챙겨 쉬어가는 꼼수를 절대로 두지 못할 스타일이다.   

우직하게 1년 365일 촬영장과 무대(그는 틈틈이 그 힘들다는 뮤지컬까지 출연한다. 왜? 본인이 좋아하니까.)를 오가며 열일하는 그를 대중은 아끼고 칭찬했었다. 그런 호평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2014년 '국제시장' 천만에 이어 2015년 '베테랑'으로 연속 천만, 그리고 '히말라야' 900만, '검사외전' 900만으로 대박 행진이 이어지면서다. 이 네 작품으로 황정민을 본 관객수만 거의 5천만명에 육박한다. 
예전과 다름없이 황정민은 매 작품마다 그 역할에 맞춰 혼신의 힘을 쏟는 연기를 선보였지만 다양한 관객 평이 나올수 밖에 없는 상황. '국제시장' '히말라야'의 감동드라마와 '베테랑' '검사외전'의 범죄액션 장르가 겹친 것도 '황정민 과소비'론을 부추켰다. 안타깝게도 이 시점부터 '숟가락' 배우 황정민에게 "또 황정민이냐" 볼 맨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황정민이 지난 10여년 배우로서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2003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2005년 '달콤한 인생' '천군' '너는 내운명'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전도연과의 멜로 '너는 내운명'에서 순박한 시골 청년 김석중 역을 맡아 관객들 눈물을 쏙 뺐고 상복과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스태프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고 했다. 여기가 톱스타 황정민의 출발선이다.
이후 '사생결단'(2006) '검은집' '행복'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열한번째 엄마'(이상 2007)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 '그림자 살인' '오감도'와 드라마 '그저 바라 보다가'(이상 2009)로 작품수를 늘려갔다. 여기까지는 아직 '황정민=흥행수표' 공식이 나오지 않았고 그저 연기 잘하고 열심히 하는 배우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수요가 적으니 폭발적인 출연작 증가로 연결되지 못한 시기. 이때까지 그의 최고 흥행작은 '너는 내운명' 300만 명에 선이 그어졌다.
2010년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맹인검객 황정학으로 신 들린 연기를 선보인 그는 류승완 감독과의 첫 만남 '부당거래'로 흥행의 재미도 조금 맛보면서 드디어 2012년 전환점을 맞이한다. 코미디 '댄싱퀸'의 대박으로 활짝 웃더니 액션 누아르 '신세계'로 악역 끝판왕을 선보였고 '전설의 주먹'에서 화끈한 주먹을 휘둘렀다.
황정민은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연기가 제 천직이다. 다른 무엇보다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순간이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속내를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 그는 천만영화 두 편을 연속으로 찍은 뒤 해주면 부르는데로 출연료가 금값, 아닌 다이아몬드값이 된 시점에서 조차.   
나홍진 감독의 최신작 '곡성'에서 황정민은 신명나는 굿판으로 다시 한 번 관객들을 설득한다. "제가 사랑하는 건 허명이나 재화가 아니고 배우로서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신 내린 무당으로 나선 그에게는 귀기와 영험이 교차해 지나간다. 출연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중반부 이후에나 등장하지만 흡입력은 최고다. 그래서 더 무섭다. 
무당 일광(황정민 분)은 곡성에서 발생한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데 키를 쥔 인물이다. 범상한 세속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제대로 묘사하느냐 못하느냐에 영화 '곡성'의 명줄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황정민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왜 또 황정민이냐?"고 묻거든 "무당 일광의 굿판을 보시라"고 다시 권유하고 싶다. /mcgwire@osen.co.kr
[사진] '곡성'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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