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별명이 '깐느박'일까. 박찬욱 감독은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칸의 총아'다. 작품이 초청돼 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 그의 첫 칸 영화제 진출작 '올드보이'(2004)는 제62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2009년 '박쥐'는 심사위원 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가 제69회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을 당시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제 수상을 염두하지 않고 '상업적'으로 만든 작품이기 때문. 15일 오후(현지시각) 프랑스 칸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박 감독은 역시나 "수상은 전혀 기대 안 한다"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다른 기자들은 농담한다고 생각하던데요. 진심으로 영화제에서 상을 주기에는 상업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쟁에 초대된 것도 의아했고, 상은 기대 전혀 안 해요."
'아가씨'는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일제 시대 배경으로 옮겨 각색한 작품이다. 귀족 아가씨와 하녀로 만난 두 여인의 사랑을 그리는 이 작품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핑거스미스'의 매력적인 구조 때문이었다.
"그 작품을 못 봤으면 몰라도 읽었다면 하고 싶었을 거 같아요. 1부가 끝날 때 반전으로 끝나는 건 너무 충격이죠. 인생에 대한 뭔가가 담겨있는 걸 같아요. 자기가 주도해서 속이고 똑똑한 줄 알았는데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것..때로는 인생이 그런 거죠. 잘난척하고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아닐 때가 많아요. 그런 비유로 아주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어요."
박찬욱 감독은 '대배우' 속 이경영이 연기했던 '칸느박' 캐릭터 이후, 자연스럽게 자신의 별명이 '깐느박'으로 굳어진 것에 대해 "류승완이 시작한 건데, 아 진짜..(한숨) 그럴 줄 몰랐다. 창피해 죽겠다. 창피할 뿐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는 모습에서는 거장의 인간적인 매력이 엿보이기도.
오는 18일에는 근방으로 여행을 갈 생각이다. 박찬욱 감독은 "나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웃음을 줬다. '박쥐' 당시에도 그는 칸 영화제 일정을 마치고 여행을 갔다 수상에 대한 귀띔을 듣고 다시 폐막에 맞춰 칸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과연 그는 이번에도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기분 좋은 귀환(?)을 할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eujene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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