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안 도와주시네요"
성시경의 '축가' 콘서트가 예고된 15일, 전날과 달리 해가 저물수록 촉촉하게 내리던 봄비는 점점 거세졌다. 야외 콘서트라 관객들은 비를 맞으며 공연을 즐길 수밖에. 하지만 폭우와 강풍은 오히려 성시경과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두고두고 회자될 유쾌한 기억이다.
15일 오후 7시,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성시경의 '축가' 콘서트가 열렸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이 공연은 역시나 티켓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고 현장에는 6천여 명의 관객들로 가득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형형색색의 우비를 갖춰 입고 성시경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약속한 시각, 조세호의 사회로 결혼식이 시작됐고 신랑 신부들 사이 성시경이 등장했다. 비가 오는 날씨를 원망하며 우비를 찢어버린 그는 비를 맞으며 '팅킹 아웃 라우드'를 열창했다. 하늘을 올라다보며 울상을 짓거나 관객들을 향해 "미안합니다"라고 거듭 사과한 그였다.
마이크를 고쳐잡은 성시경은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날짜를 2주 당겼을 때 여러분이 추우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데 비가 온다더라. 이틀 중 하루만 비가 온대서 일기예보를 수만 번 검색했다. 제가 불자인데 어제는 석가탄신일이라서 부처님이 도와주셨다. 하지만 오늘은 죄송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분명 궂은 날씨는 성시경과 관객들에게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성시경이 2012년부터 매년 하고 있는 '축가' 콘서트의 묘미는 봄날의 포근한 밤 야외에 울려퍼지는 성시경의 목소리와 관객들의 울고 웃는 사랑이야기가 달콤하게 버무려지는 것.
하지만 폭우 속 성시경의 열창도 훌륭했다. 비를 쫄딱 맞고 있는 관객들에게 미안했던 성시경은 더욱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팝콘', '봄이 좋냐', '좋을텐데', '너는 나의 봄이다' 등 다채로운 음악들로 팬들을 웃기고 울렸다. 십센치의 '봄이 좋냐'를 성시경의 깐족거리는 목소리로 들으니 솔로들의 통쾌함은 곱절 이상이었다.
게스트도 화려했다. 거미는 성시경과 함께 '유아 마이 에브리싱'을 부른 뒤 '어른아이'로 관객들을 춤 추게 했다. 윤종신은 '본능적으로'와 '1월부터 6월까지'를 열창하며 분위기를 후끈 달궜다. 게스트들 역시 빗방울이 떨어지는 무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다했다.
알려진 대로 아이오아이가 등장하자 다소 지쳐 있던 남성 관객들이 뜨겁게 환호했다. 성시경은 이들과 함께 '픽미'를 추며 댄스 본능을 또다시 뽐냈다. 아기자기한 소녀들 사이 교복 재킷과 핑크색 바지를 입은 성시경이 우뚝 서 춤을 추니 장관이었다.
그러나 역시 '성발라'는 '성발라'였다. '너의 모든 순간', '너에게'를 감미롭게 열창한 그는 예정된 리스트에 없었던 '비처럼 음악처럼'을 부르겠다고 했다. 쏟아지는 비가 야속한 듯 피를 토할 정도로 울부짖으며 노래하는 그를 보며 관객들은 크게 감동했다.
성시경은 '세 사람',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내일 할일', '희재', '거리에서' 등 자신의 대표곡과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새롭게 해석했고 '뜨거운 안녕', '미소천사'로 공연 말미까지 분위기를 신 나게 이끌었다. 앙코르에선 '넌 감동이었어', '걱정말아요 그대', '두 사람', '내게 오는 길'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엔딩을 이뤘다.
4시간여 공연 동안 무심한 하늘은 구멍이 뚫린 듯 비를 쏟아냈다. 덕분에 공연 시작과 동시에 성시경은 온몸을 적셨고 팬들은 추위와 싸웠다. 하지만 그래서 더 뜻깊은 추억이 완성됐다. 미안한 마음에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한 성시경, 그의 진심을 느끼며 4시간을 오롯이 즐긴 팬들이기 때문.
폭우 따위 '성발라'의 콘서트에선 조명에 더욱 빛나는 장치였을 뿐, 성시경도 6천여 팬들도 멋진 하루를 보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2016년 5월 15일 '축가' 현장이었다. /comet568@osen.co.kr
[사진] 젤리피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