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진웅은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의 성공 이후, 20~30대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급부상했다. '연기파' 배우로 호감을 샀던 그는 열혈 형사 이재한 캐릭터로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한 단계 더 넓혔고, 그 결과 영화·드라마 불문 캐스팅 1순위 배우로 떠올랐다.
박찬욱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아가씨'에서 조진웅이 맡은 역할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살아가는 아가씨 히데코의 후견인 코우즈키다. 코우즈키는 아가씨의 이모부로 '변태'라고 불러도 될 만큼 특이한 취미를 갖고 있다. 조진웅은 자신의 배역을 "기능적인 역할"이라 소개했지만, 무엇이라 해석하든 영화 전반의 기괴한 분위기를 주도한 코우즈키 백작의 활약은 그 의미를 축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15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만난 조진웅은 다소 부은 얼굴이었다. 전날 밤 '아가씨'의 공식 상영회를 마치고 관련 파티에서 스태프 및 배우들과 함께 밤새 즐긴 탓이었다. 소속사 대표에게 "살 찌고 갈 거니까 뭐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던 그는 기분이 좋아보였고, 영화제의 분위기에 취한 모습이었다.
"변태 캐릭터? 내가 변태라..하하하"
코우즈키 백작 역을 위해서는 노인 분장이 필수였다. 조진웅의 노인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일말의 어색함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노인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인을 흉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무살 때 마흔 살 역할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제 꿈이 중년이 되는 거였죠.(중략) 그 때 간과하고 있는 게 있더라고요. 왜 이걸 쫓아 하려고 했을까? 아마 나는 60세, 70세가 돼도 이 모습 일텐데. 왜 그걸 흉내내려고 했지? 이번에는 분장이 이렇게 돼 있고 누가 봐도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 내가 나이가 많아 보이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노인 목소리를 내며)"
'변태 캐릭터를 맡았다'는 말에 조진웅은 "내가 굉장히 변태적인 것 같다"고 답해 웃음을 줬다. 그야말로 "내멋대로" 연기를 했다는 그는 코우즈키라는 인물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연기하면서 느꼈던 색다른 즐거움도 있었던 듯 했다. 무엇보다 현장이 유난히 더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박찬욱 감독에 대한 신뢰 덕분이었다.
"아시다시피 '깐느박'이에요. 알아서 하세요. 그래서 전 모니터는 보지도 않았어요. 모니터를 보는 이유는 한 가지. '더블 액션'을 맞추려고 하는 거죠. (박찬욱 감독 작품) 현장이 상당히 흥분되게 만들었어요. '아가씨' 현장은 굉장히 놀 수 있는 범위가 광범위해요. 기자회견 할 때도 '내 멋대로 했다'고 얘기했는데 내 멋대로 하다보면 감독님이 좋은 걸 고르는 거죠. 그렇게 신뢰할 수 있었던 건 나도 (배우로서) 호사를 누리는 거에요. 박 감독님 아닌 신인 감독이었다면 '배우가 저렇게 했는데 그냥 OK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잖아요. 박 감독님이라 즐거웠던 게 있었죠."
"하정우와 연기, 한 편의 공연 같았죠"
조진웅은 동료 하정우와의 남다른 호흡에 대해 언급했다. 하정우와의 연기는 한 편의 공연 같았다고. 두 사람은 영화 '암살'에서 함께하며 우정을 쌓은 바 있다.
"하배우가 주는 에너지가 상당하죠. 원래 친해서 그런 낯섦을 표현하는 자체가 어색하지 않았어요. 작업을 하고 나면 한 세트를 마쳤는데 공연을 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게 배우로서는 제일 행복한 거에요. '이렇게 해줄래?', '저렇게 해줄래?' 이렇게 가면 한도 끝도 없어요. 툭 보면, 그냥 슥슥 하는 거죠. 그래서 그냥 우리끼리는 되게 재밌었어요."
이런 두 사람을 보고 박찬욱 감독은 "귀엽다"고 표현했단다. 다 큰 성인 남성 두 사람, '아가씨'에서는 더욱 '귀여움'과는 거리가 있는 배역임에도 함께 알콩달콩(?)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박감독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지 모른다.
"문어가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이 되게 좀 어떻게 보자면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그런데, 저와 하정우는 어제 공식 상영회로 영화를 보면서 서로 옆구리를 찌르면서 '저 때 그랬지' 하면서 웃었어요. 하정우가 자기는 (특정 장면에서)아파해야 하는데 너무 웃기대요. 둘이 연기하는데 굉장히 시너지가 있었어요. 정우 씨가 아니었으면 사전 리허설을 두 달은 해야하지 않았을까요? 감독님이 그걸 보더니 귀엽다고 하시더라고요. '너희들이 귀엽잖아'라고.(웃음)"
"유명해졌다? 슬리퍼 신고, 맥주 마시고 똑같아요"
'시그널'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드라마로 '꽃미남' 배우들 부럽지 않게 젊은 여성들의 사랑 받는 남자 배우가 됐다. 그러나 조진웅은 여전히 자신은 변한 게 없다고 했다. 동네에서 매일 자신을 알아보고 "조진웅 아저씨"라고 인사하는 꼬마, 어느덧 라디오 작가로 성장한 팬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의 소탈한 면은 정말 '동네 오빠'의 그것이었다.
"나는 그런 것 같아요. 요즘에도 동네에서 슬리퍼 신고 전집 가서 맥주 한 잔 해요. 그럼 어떤 사람이 쳐다봐요. 한 시간 쳐다보다 슥 와서 '배우 아니냐'고 그래요. 그러면 '나 그 사람 닮았다는 얘기 너무 많이 들어요' 하고 말해요. 그럼 그 사람은 돌아가서 '야 맞잖아. 아니잖아. 맨발로 슬리퍼 신고 오겠냐?' 이래요.(웃음) 제가 용산에 살아요. 아침에 (미세먼지 때문에) 남산이 안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마스크를 썼어요. 그런데 저희 동에 사는 꼬마가 절 대번에 알아봐요. '조진웅 아저씨', '엇? 저리가' 이러죠. 매일 보는대도 매일 인사를 해요."
그의 오랜 팬 중 한 명은 라디오 작가가 됐다. 그 인연으로 그 팬이 일하고 있는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팬에 대한 뿌듯한 마음과 애정을 드러냈다.
"팬들 중 한 명이 작가 지망생이었는데 진짜 SBS 라디오 작가가 됐어요. 막내 작가로 들어와서 그래서 거기 출연한 적이 있어요. SBS 라디오 '김창렬의 올드 스쿨' 막내 작가인데, 나가서 '대단하다, 너. 여기 들어오기 힘들던데'했떠니 '저 그런데 드라마 할 거에요'하면서 절 캐스팅 하겠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라'고 했죠.(웃음)" /eujenej@osen.co.kr
[사진] CJ엔터테인먼트, AFP BB=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