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는 유독 기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배우다.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상대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소탈한 성격 덕분이다. 15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만난 그는 역시나 오랜 친구를 대하듯 친근한 태도로 취재진을 반겼다.
'아가씨'(박찬욱 감독)에서 하정우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 아가씨 히데코와 하녀 숙희의 사이에서 계략을 짜는 사기꾼 백작이다. 그는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 아가씨의 옆에 숙희를 붙여둔다.
인터뷰 자리에 앉자마자 하정우는 "충격적이었나요. 영화가?"라고 질문을 던져 웃음을 줬다. 전날 밤 열린 '아가씨'의 공식 상영회 이후의 반응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영화를 보고) 여러 감정이 드는데 그건 얘기할 수 없어요.(웃음) 대체로 재밌게 봤습니다. 흥미로웠고요. 한국 관객의 반응이 궁금해요. 어떻게 볼지. 이걸 판타지로 받아들이면 재밌는 요소가 많이 있을 겁니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영화다. 아름다운 미장센은 변함이 없지만,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만큼 조금 더 부드럽고 섬세한 분위기가 감돈다. 하정우는 완성된 영화 속에 담긴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재밌었다면서 박 감독을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칭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재밌어요. 같이 얘기하면 재밌고, 너무 웃기죠. 설명할 수 없어요. 장난을 좋아하세요. 에필로그 장면이 제일 웃겨요. 시나리오를 보다 영상으로 보니까 감독님의 장난기와 워딩이 잘 보였어요. (중략) '암살'이 1월 말에 끝나고 6월 중순 '아가씨'의 크랭크인에 들어갈 때까지 감독님과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낼 시간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감독님에 대한 신뢰감 같은 것도 많이 생기고 친밀감도 많이 들더라고요."
'허삼관', '롤러코스터' 등 두 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한 하정우는 '거장' 박찬욱에게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감독으로서의 태도와 자세라고 했다.
"감독님이 영화를 생각하고 준비하고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그 과정이 정말 놀라웠어요. 하나를 허투루 넘긴 게 없었죠. '아가씨' 시나리오는 처음에 '스토커' 전부터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영화적으로 시나리오를 풀만 한 게 생각이 안 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더 묵혀야겠다, 고민해야겠다고 해서 '스토커'를 먼저 하시고, 이걸 다시 꺼내서 준비했대요. 이런 자세인 것 같아요. 100% 확신이 없으면 하지 않고, 그게 다 차올랐을 때 그때 비로소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죠. 그게 굉장히 놀라운 부분인 것 같아요."
하정우 하면 뗄레야 뗄 수 없는 감독이 '추격자', '황해'의 나홍진 감독이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으로 제69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번에 다른 영화로 칸을 찾은 두 사람은 하정우가 먼저 칸으로 오기 전 전화 통화를 한 차례 했다고.
"감회가 새롭죠. 6년 전에 '황해'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전라도 음식점에서 언론시사회 리뷰를 보면서 운 적이 있어요. 11개월 촬영을 하고 2년간 준비하고, 후반 작업을 하고 제작사 대표님과 윤석이 형, 나홍진 감독님, PD가 함께 앉아 막걸리 먹으면서 그걸 한참 얘기했어요. (나홍진 감독님이) 그 때 결심했다고 하더라고요. '추격자' 때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영화를 찍고 싶다고요. 너무 다행이고 좋은 이야기였죠."
함께 눈물을 흘렸던 나홍진 감독은 6년 만에 낸 세 번째 영화 '곡성'으로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승승장구하고 있다. 단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좋은 흥행 성적을 보여준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도 진출하며 경쟁 부문에 진출한 '아가씨'와 더불어 국내 관객들의 집중 관심을 받고 있다.
하정우는 영화 후반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대사를 하나 내뱉는다. 그는 이 대사가 자신의 영화 속 어록을 잇는 대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극 중 내가 하는)마지막 대사가 참, 한국 영화 역사에 남을 만한어록이 됐으면 좋겠어요. '살아있네' 이후로 명대사를 여러 개 갖고 있어요. 개그맨으로 따지면 유행어를 여러 개 갖고 있는건데 '사랑한다 ○○○아', '살아있네' 등이죠. 그게 당장은 충격으로 다가오겠지만 우리가 나이를 먹어 이 영화를 EBS 명작 프로에서 만난다면 굉장히 그 시기를 떠올리면서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 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끝까지 유머를 놓지 않는 하정우의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인터뷰였다. /eujene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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