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스릴러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온 나홍진 감독이 6년 만에 선택한 ‘곡성’(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배급)은 훨씬 더 깊은 장르 안으로 들어간 미스터리 호러 오컬트다. 러닝타임도 무려 156분으로 감독은 3년에 가까운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무척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는 것과 더불어 그 안에 담고자 했던 고민이 무척 컸음을 아예 드러내놓고 수다를 떤다.
장르 영화란 마치 수학공식과 같다. 이 영화 역시 철저한 장르적 방정식에 충실하지만 다소 복잡하다. 종교와 토템신앙에 좀비 판타지 미스터리 장르 등을 혼합해 관객 스스로 자아 내의 두뇌싸움을 펼치도록 만드는, 매우 불편하면서도 꽤 장엄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향후 몇 년간 이런 호러물은 한국에서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며 나 감독의 역작으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만큼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목은 스토리가 펼쳐지는 전남 곡성의 지명, ‘곡소리’, 그리고 성(도시, 마을)을 둘러싼 성벽 즉 옹성 등의 3가지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교적 조용한, 이웃집 수저 개수까지 알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괴이한 연쇄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퍼져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곡소리, 그리고 이 변괴에 쑥대밭이 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철벽처럼 친 철옹성 같은 불신 혹은 믿음이 바로 영화를 관통하는 제목의 키워드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장 37∼39절.
오프닝 자막이 지나가면 낚시를 하는 한 장년의 남자를 잡은 뒤 곧바로 스피디하게 마을의 처참한 살인사건 현장이 전 장면을 밀어낸다. 수갑을 찬 채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남자가 검은자가 뒤집혀 흰자만 남은 눈으로 미세한 경련을 하고 있다. 그는 온 가족을 살해한 가장이다.
이후 미친 여자가 역시 가족을 살해하는가 하면 마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진이 생긴 사람들이 속출하고 살인사건은 여전히 미궁을 헤맨다.
파출소장 바로 아래 서열의 경찰 종구(곽도원)는 겁도 많고 소심한, 시골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중년남성이다. 장모를 모시고 초등학생 외동딸 효진(김환희)을 키우며 여우 같은 아내와 알콩달콩 살아가던 그의 평범한 삶이 이 기괴한 살인사건의 연쇄발생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식구들의 시선을 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섹스로 풀어야하는 개인적 특성 상 아내와 카섹스를 하다 딸에게 들킨 게 엄청나게 부끄럽고 죄스러운 게 그다.
살인사건 현장을 지키던 그에게 처음 보는 이상한 분위기의 처녀 무명(천우희)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생생한 목격자라고 증언한 뒤 그가 한눈을 파는 사이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던 어느 날 되바라지긴 했지만 상스럽진 않았던 효진이 걸진 욕을 하는가 하면 평소 입에도 안 대던 생선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엄청난 식욕을 보이는 등 이상하게 변한다. 그런 딸이 수상해 잠든 뒤 다리에 난 발진을 발견하는 순간 눈을 뜬 효진은 차가운 톤으로 “딸의 치마를 들치고 시방 뭐하는 거여”라고 싸늘하게 꾸짖는다.
장모가 용하다는 무당을 섭외하는 사이 마을 사람으로부터 얼마 전 갑자기 마을에 들어온 한 일본인이 수상하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종구는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부제(가톨릭의 사제 아래 계급)를 불러 일본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찾아 나선다.
외지인의 집을 살피던 종구 일행은 그 안에서 이단 종교의 제단 같은 것을 발견하는가 하면 피해자들의 사진이 덕지덕지 벽에 붙은 것을 목도하곤 외지인을 강력하게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무단침입은 불법. 그런 그들의 그릇된 행각은 외지인에게 발각된다.
심증만 갈 뿐 증거도 확신도 없는 사이 효진의 발진과 발작은 점점 더 심해지고 또 다시 외지인의 집을 찾은 종구는 분노해 닥치는 대로 제단을 파괴한 뒤 묻는다. “너는 누구냐? 여긴 왜 왔냐?”고. 그러자 외지인은 “내가 사실대로 말한다고 네가 믿겠느냐?”며 알 듯 모를 듯한 답변을 내곤 마치 선지자 같은 시선으로 종구를 바라볼 따름이다.
드디어 무당 일광(황정민)이 나타나 점궤를 보더니 “건드려서는 안 될 놈을 건드렸다.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하며 본 악귀 중 가장 강력한 놈이 나타났다”며 외지인이 귀신이고 범인임을 확고하게 못 박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일대의 접전이 될 굿판을 벌인다.
굿이 시작되자 산 속에 기거하는 외지인 역시 주문에 들어가고 두 사람의 치열한 기 싸움은 치찰음을 동반한 굉음에 가까운 굿판의 음악으로 스크린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가며 관객을 블랙홀로 빨아들일 듯한 기세로 절정에 치닫고, 이에 따라 효진의 발작은 광분으로 변해 금세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른다.
외지인 역시 괴로움을 못 이기고 기절하는 순간 종구는 효진이 죽을 것 같은 생각에 일광의 굿을 멈추게 만든다. 일광의 얼굴에 감정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묘한 흐름이 살짝 스쳐지나간다.
영화는 괴이한 사건의 원인이 뭔가를 물으며 시종일관 음산하고 기괴하며 음울하게 시작된다. 중반을 지나면서 범인이 외지인인지, 무명인지, 아니면 제 3의 인물(?)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미끼를 내던진다. 사건을 캐고 묻는 주역은 종구지만 그건 곧 관객의 시선이기도 하다.
영화 끝에 섬뜩한 결론은 나오지만 명쾌하진 않다. 그건 종구가 부제를 통해 연로한 사제를 만나 엑소시즘을 부탁했을 때 사제가 무책임하게 “의사를 믿고 그에게 맡기라”며 회피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감독은 관객에게 한동안 미신으로 경원시됐던 주술신앙과 점잖은 천주교를 저울질하는 숙제를 내놓듯이 영화의 매조지 역시 관객들의 자의적 해석과 판단에 맡기는 영특함을 발휘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이 으스스하고 관람 후에도 한동안 종구처럼 악몽을 꾸기에 충분한 수준급 호러다.
그리고 영화는 묻는다. 기록적으론 1945년 8월 15일 해방됐지만 진정으로 일제의 침략은 끝났고, 역사의 과오는 청산됐는지를.
해방 후 전 국민을 대표해 나라를 복구하고 재건할 일꾼의 선두에 선 이승만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친미에 눈이 멀었고, 그 정권을 받쳐줄 입법 사법 행정의 지도자들 역시 다수가 친일의 부역자들이었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아직도 우리 생활과 언어 여러 곳엔 일제의 잔재가 존재한다. 어려운 행정 법정 용어가 대표적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머슴이어야 할 이승만은 스스로 국부라 칭하며 왕 노릇을 했다.
뿐만 아니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해방 전 일본이 만주에 심은 괴뢰군의 장교였다. 그리고 그 밑에 기생했던 친일의 망령들은 마치 물귀신처럼 아직도 우리 생활 깊숙이 내린 역사왜곡의 뿌리를 질긴 생명력으로 이어가고 있다.
악마는 먼 데 있는 게 아니고, 결코 뼈와 살이 없어서 눈에 안 보이는 게 아니라고 영화는 분명하게 말한다. 이 영화는 오는 8월 15일이 지날 때까지 상영돼야 한다. ‘록키 호러 픽처 쇼’처럼 장기상영되면 더 좋다. 15세 이상 관람 가. 12일 개봉.
사족: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쿠니무라 준의 연기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그런데 만 14살의 김환희의 연기력이 결코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엑소시스트’의 완성을 가능케 한 린다 블레어가 봐도 놀랄 혼신의 접신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