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영화에 인색한 우리나라 극장가에 오랜만에 볼 만한 작품들이 나왔다. 일주일 차이를 두고 연달아 관객 앞에 첫 선을 보인 영화 ‘곡성’과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 이야기다. 흔히 영화계 비수기로 일컬어지는 5월인데다가 초대형 블록버스터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버티고 있는 박스오피스에서 1위와 3위를 굳건히 지키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두 영화 모두 제법 근사하게 빠진 장르물이라는 점도 닮았지만, 걸출한 배우들에 밀리지 않는 아역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먼저 개봉한 ‘탐정 홍길동’에는 두 명의 아역이 등장한다. 자매지간인 동이(노정의 분)와 말순(김하나 분)이다. 주인공 홍길동(이제훈 분)과의 불편한 동행으로 극을 이끌어 가는 두 어린 배우들은 연기력이라면 지지 않는 대선배들과의 협업에서도 대단한 존재감을 뽐내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홍길동의 ‘골치 아픈 껌딱지’ 말순 역의 김하나는 ‘탐정 홍길동’이 첫 작품임에도 놀라운 연기를 펼쳤다. 그야말로 껌딱지처럼 홍길동과 언니 동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눈치 없는 행동들로 일을 만들지만, 그 순수함과 능청스러움은 결코 밉지 않다.
어린애들을 끔찍히 싫어하는 홍길동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면박을 주더라도 기죽지 않고 “일을 왜 저렇게 해?” “아저씨, 친구 없죠?”라고 응수하는 말순의 깜찍한 모습에 관객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않고 묻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다소 불친절할 수도 있을 영화 전개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준 캐릭터다. 조성희 감독이 그의 사진만 보고 첫눈에 반해 캐스팅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반갑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런가 하면 ‘곡성’의 김환희 역시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에 쿠니무라준이라는 뛰어난 배우들 사이에서 맹활약했다. 2008년 드라마 ‘불한당’으로 연기를 시작한 김환희는 어느덧 데뷔 8년차 베테랑 배우다. 그는 ‘곡성’에서 종구(곽도원 분)의 금쪽 같은 외동딸 효진 역으로 등장하는데, 진짜 ‘신들린’ 연기를 신들린 듯 소화해 내는 김환희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 충분했다.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였던 아버지 종구를 증오가 가득 어린 눈빛으로 쏘아 보며 욕설을 퍼붓는 김환희의 귀기 어린 얼굴은 단연 ‘곡성’의 볼거리다. 사투리 연기 역시 일품인데, 이를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전라도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은 지난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역배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배우라고 여겼다”며 “김환희는 몇 번의 연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아역배우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역이라는 생각을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며 김환희와 호흡을 맞췄던 당시를 떠올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김환희는 촬영 들어가기 전후에 항상 기도를 하며 마음을 달랬으며, 걱정이 되어 괜찮냐고 물으면 하나님 이야기를 했다는 후문.
나홍진 감독 뿐만 아니라 곽도원도 김환희를 극찬했다. 곽도원은 “여태 감독들이 아역 배우에게 연기 지시를 하는 것을 보면 ‘강아지가 죽었을 때 생각해 봐?’는 등의 모양새였는데, 나 감독은 완전히 어른처럼 대했다”며 “그러니 아이가 연기를 할 때 아동극처럼 안 하고 자기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려 애쓰더라”고 대견해 했다.
이처럼 김하나와 김환희는 웬만한 성인 연기자도 압도하는 연기력으로 ‘탐정 홍길동’과 ‘곡성’을 ‘하드 캐리’했다. 두 배우가 무럭무럭 성장하며 만들어 나갈 ‘잘 자란 아역의 좋은 예’에 더욱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곡성’·‘탐정 홍길동’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