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여러 요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그 어떤 케미스트리(조합)도 살리고, 그 어떤 전개도 개연성 있게 보이게 하고, 나아가 시청자들의 중간 유입까지 이끈 배우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MBC 수목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극본 문희정, 연출 한희 김성욱)의 이야기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의 시작은 불안했다. 한참 탄력 받은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30%를 목전에 두고 있던 차에 첫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 수목극 중 가장 늦게 시작한 후발주자라는 부담감도 큰데, 최악의 대진운까지 조건은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첫 방송 시청률 3.9%(닐슨코리아 제공·전국 기준)로 최약체였던 이 드라마는 결국 동시간대 1위에 오르는 짜릿한 역전극을 썼다. 하나의 요인은 ‘태양의 후예’가 종영하면서 일부 시청자들이 유입된 덕분이고, 또 다른 요인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배우의 힘이 컸다.
아무리 좋은 대본과 좋은 그림이 받쳐준다고 해도 멜로의 몰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배우들간의 케미다. 그렇다면 차지원(이진욱 분)과 김스완(문채원 분)을 칭하는 ‘블랙스완’ 커플은 정통 멜로의 정석 케미였다고 할 수 있다. 운명이 갈라놓은 비극적인 상황에 서로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은 하루하루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에게 가슴 깊이 뜨거운 울림을 줬다.
특히 멜로에 특화된 이진욱의 눈빛과 드라마의 빛과 같은 역할을 했던 문채원의 사랑스러움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블랙스완’ 커플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때문에 드라마의 개연성은 어떻게 돼도 좋으니 배우들이 모두 살고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바람도 우스갯소리가 아니게 된 것.
한정된 분량 탓에 극중 캐릭터의 모든 이야기를 전달할 수는 없는 법.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배우를 통해 캐릭터가 살아 숨 쉬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민선재 역을 맡은 김강우는 그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게 하고, 그로 인해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시켰다.
선재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었다. 지원과는 가족과 다름없었던 시절을 지나 악마의 유혹에 시달려 흑화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모든 것을 자신이 짊어지고 가려는 입체적인 인생을 살았다. 이 복잡한 흐름 속에서 섬세하게 감정선을 이끌어나갔던 김강우가 있어 드라마는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사랑을 받았던 윤마리 역의 유인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이미지를 탈피하고 단아한 매력을 내뿜은 것. 특히 징역을 살게 된 선재와 그를 기다리겠다는 마리의 마지막 신을 통해 두 사람은 시청자들에게 한없이 아픈 손가락이 됐다.
이밖에 한 없이 멋졌던 서우진 역의 송재림,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므텅 역의 이원종과 홍인자 역의 길혜연,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던 차지수 역의 임세미, 극중 완벽히 악마로 살았던 백은도 역의 전국환 등 모든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던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다. / besodam@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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