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별명은 악마 감독이다. 등장하면서부터 국내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렸던 '추격자', 독한 리얼리즘으로 놀라움을 줬던 '황해' 그리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대혼란 속에 가둔 세 번째 영화 '곡성'까지. 영화를 본 관객들은 끊임없이 토론을 펼치고, 해외 평론가와 바이어들은 찬사를 쏟아낸다. 답이 뭔지, 그래서 정체가 뭔지 몰려오는 질문 세례에 이 영리하고 집요한 연출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게 답"이라며 자신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니 악마가 아닌가.
'곡성'은 제69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발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공식 상영회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관객들은 2시간 3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영화를 봤고, 영화 특유의 웃음 코드에 배꼽을 잡았다. 이후 이날 영화를 본 현지 관객들은 자신의 SNS에 "나홍진이라 불리는 악마가 만든 곡성", "곡성은 칸 영화제 중 나에게 첫 경탄을 주었다", "내가 본 최고의 미친 한국 영화" 등의 찬사를 늘어놨다.
"세 번째 칸 레드카펫, 떨렸느냐고?"
나홍진 감독의 장편 영화 세 편은 이로써 모두 칸 영화제의 부름을 받았다. '추격자'가 제61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황해'가 제64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대됐고, '곡성'이 올해 비경쟁 부문에 초대됐다. 칸의 레드카펫도 세 번이나 밟는 셈. 지난 밤 팔레 드 페스티발의 레드카펫을 밟은 나홍진 감독은 처음 온 천우희를 멋지게 에스코트하며 셔터 세례를 받았다.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여유로워 보였다"다는 말에 그는 "아니다. 엄청 쫄았다"고 답해 웃음을 줬다.
"엄청 쫄았는데? 에스코트를 했던 건 (천)우희 씨 치마가 땅에 있어서 밟히니까. '천천히 가요. 굽이 너무 높아요.'라고 하는데 나도 좁아서 힘들었어요. 물론 옛날같이 너무 그러진(긴장하진) 않았죠."
세 번이나 칸의 부름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 것 같은지 묻자 나홍진 감독은 "맥락이 잘 맞았던 것"이라며 겸손을 보였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웃음) 이 사람들이 저를 일부러 자꾸 부르는 건 아닌 거 같고, 저는 영화를 출품하면 그 영화를 보다가도 모르겠어요.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작품은 100개인데 그 중 10개를 뽑으래요. 다양한 것,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 맥락이 잘 맞은 거죠."
"티에리 프레모, '다음엔 경쟁'이라더라"
'곡성'은 약 6분간 박수를 받았다. 관객들은 열광했고, 감독과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찬사를 보냈다. 정작 나홍진 감독은 "민망해서 빨리 나왔다"고 말하며 부끄러워했던 상황. 밖으로 나온 나홍진 감독은 또 한 사람의 열렬한 반응에 놀랐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집행위원장이 자신의 차까지 데려다 주며 "다음엔 칸으로 초대하겠다"고 말했던 사실을 전했다.
"민망해서 나갔어요. 그 정도 받았으면 됐지 뭘 더 받아요. 가야죠. 밤도 늦었는데.(웃음) 집행위원장님이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집행위원장이 다음에 또 칸에서 보자고 러브콜을 하셨어요. 저에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다음엔 경쟁이다' 이러면서 차까지 마중 나오셨어요. 전에는 안 그러셨거든요. 원래는 계단에서 '바이바이'를 해요. 차까지 마중나와주시니까 놀랐어요. 좋게 보셨나봅니다.(웃음)"
경쟁 부문 진출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곡성'은 다소 미완성의 상태로 급박하게 칸 영화제에 출품됐다고 알려졌다.) 혹 감독이 원하는 만큼 편집의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그렇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아쉽지 않았어요. 완성작으로 냈어도 올해는 박찬욱 감독님이 계시니 어렵지 않았을까요? 지금보다 더 해서 냈어도 어려웠을 거라 생각해요."
"10대 관객 많아지니 좋아..성공이 독 안 되게"
영화 '곡성'은 15세 등급을 받았다. '19금' 전공이었던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과는 훨씬 넓은 관객층을 수용하게 된 것. 나홍진 감독은 십대 관객들의 관심을 받는 기분이 생각보다 좋았다고 했다. "마치 걸그룹을 볼 때의 느낌"이었다는 것.
"(국내) 무대인사에 가서 십대다 싶은 분들을 봤어요. 무대인사는 영화가 끝나고도 하고 끝나기 전에도 하잖아요. 영화가 끝나고 애기들이 웃으면서 쫓아와서는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애들이 있어요. 우리 배우들한테 막 '오빠' 이러는 걸 보는데..와! 진짜 기분 좋더라고요. 처음 경험하는 거였어요. 걸그룹 볼 떄의 느낌? 이 친구들을 생각하고 영화를 만드는구나. 관심을 가져야하는구나 생각이 들고. 되게 기분 좋았어요. 돌고래 소리를 내더라고요."
벌써부터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조금씩 생각을 해놓은 게 있지만 뭘 구체화시켜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도 "'곡성'만큼 어렵진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만큼 '곡성'은 그에게 성장의 발판이 돼 준 작품이다.
"사실 여기서 좋은 비평이 어마어마하게 나오잖아요. 말도 안 되게 나와요. 그걸 보면 진짜 다음에는 뭘 해야하나...빨리 하고 싶었는데, 영화를 찍고 나니까..이 영화가 정리되면 사라져야 하고. 또 처박혀서. 계속 뭔가를 만지작거리면서 만들어갸죠. 당장이야 당연히 기쁜데...독이 안 되게 해야죠." /eujenej@osen.co.kr
[사진] AFP BB=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