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엑스맨’ 프리퀄 3부작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매튜 본 감독)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브라이언 싱어 감독)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엇갈리겠지만 전자가 253만여 명을, 후자가 431만여 명을 각각 동원한 국내에서의 반응만 놓고 볼 땐 최소한 국내 관객들의 입맛은 싱어 쪽이다.
그 싱어가 메가폰을 잡은 마지막 프리퀄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진작부터 ‘엑스맨’ 마니아들의 애간장을 들끓게 하고 있는 이유다. 스케일은 시리즈 사상 최고다. ‘슈퍼맨’의 메가폰을 잭 스나이더에게 빼앗겼거나 양보한, 그럼으로써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리그의 시작’에서 제외된 싱어는 그래서일까, 엄청난 사이즈로 영화의 판을 키웠다. 등장인물도 많고, 얘기도 제목대로 지구가 종말(Apocalypse)을 맞을 정도로 대재앙에 직면하며, 메시지는 살짝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냄새마저 풍긴다. 하지만 북미지역에서 혹평을 받은 게 걸림돌이다.
누가 뭐래도 인트로만큼은 최강이다. 이집트 전문가의 고증을 받아 찍었다는 기원전 3500년 전의 이집트 왕국은 그 짧은 몇 분의 서막을 위해 수많은 엑스트라를 민머리로 만들어 동원하는가 하면 의상 등 미술과 CG, 특수효과 등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이집트 문명은 가장 오래됐고, 제일 우월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영화가 시작되는 배경은 나일강 유역에서 관개 농업이 시작되고 부족국가가 출현한 시기로 이집트가 그 어느 민족보다 앞서가던 번성기의 시작이다.
이집트 문명은 중남미의 마야 아즈텍 잉카 등 3대문명 등과 함께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지구 정반대의 두 문명은 피라미드라는 불가사의한 공통점을 갖추고 있는데 당시 기술로 어떻게 그토록 거대한 돌을 정교하게 자르고 운반해 쌓았는지 현대 과학도 못 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남미에서 주로 발견된 수정해골 역시 지금의 기술로도 만들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미스터리다.
따라서 일부 고고학자 및 외계인 고대문명전수설 신봉자들은 신과 신화는 우리보다 수 천에서 수 만년 문명이 앞선 외계인의 얘기라고 주장한다. 각 문명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고 있고 실제 고대 유물에서 우주선이나 외계인을 유추하게 만드는 그림이 발견되곤 한다.
이 영화는 그 신을 돌연변이로 추정했다. 당시 이집트를 지배하던 왕은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삭)로 역시 돌연변이들을 주변에 심복으로 심어놓고 지배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고대의 사람들에게 돌연변이들을 신격화해놓고 자신은 그 신 중의 신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이건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와 올림푸스의 신들과 유사한 설정이다. 제우스는 번개를, 포세이돈은 폭풍과 지진을, 각각 다스리고, 하데스는 몸을 가리는 황금투구로 무장했다. 돌연변이의 냄새가 스멀스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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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는 피라미드 안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부하 돌연변이의 몸속으로 전이되는 의식을 치르고 영생불사의 존재가 되지만 그 찰나 반란군의 습격에 의해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혀 기약 없는 잠에 빠진다.
그러나 고대의 신에 대한 신화는 계속 구전돼 이집트에 남아있었고, 1983년 그 추종세력들이 5500년 가까이 잠들어있던 그를 잠에서 깨운다. 카이로 시내를 방황하던 그는 자신이 질서를 잡아놨던 이 세상이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서구열강이 득세하는가 하면 매우 퇴폐하고 무질서해졌다고 판단,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 사일록(올리비아 문), 스톰(알렉산드라 쉽), 아크앤젤(벤 하디) 등 자신의 입맛에 맞는 돌연변이들을 찾아내 전지전능한 자신의 신통력으로 그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준 뒤 포 호스맨으로 만들어 인류를 휩쓸어버리는 과업에 전면배치한다.
한편 하반신 불구가 된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는 ‘자비에 영재학교’를 세워놓고 비스트(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어린 돌연변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며 살고 있다. 전편에서 헤어졌던 미스틱(제니퍼 로렌스)이 나이트크롤러(코디 스밋 맥피)를 데리고 돌아오고, 퀵실버(에반 피터스)와 사이클롭스(타이 쉐리던)가 입학해 진 그레이(소피 터너)와 친구가 된다.
그런데 오히려 자비에보다 더 염동력이 뛰어난 진은 아포칼립스의 부활을 알아채고 엄청난 괴로움과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래서 자비에는 동료들과 세레브로에 들어가 매그니토를 찾는 과정에서 그만 아포칼립스에게 노출된 후 그의 조종을 받게 된다.
공간이동을 통해 자비에를 잡아온 아포칼립스는 그를 통해 전 세계에 선전포고를 한 뒤 지구상의 주요 무기들을 모두 가동시킨 뒤 지구 전체를 파괴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아포칼립스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비에의 몸을 얻어 자신의 능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려 하고, 자비에 영재학교의 돌연변이들은 포 호스맨조차 감당해내기 힘든데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진짜 신 같은 능력을 지닌 아포칼립스를 대적할 엄두조차 못 낸다. 과연 지구는 요한 계시록(Apocalypse)에 적힌 종말을 맞을 것인가?
고대 이집트의 고증만큼은 비교적 탄탄하다. 엑스트라들을 실제 이집트인 혹은 유사하게 생긴 배우들로 포진시켰으며 현대의 카이로 거리도 그럴듯하게 재현해냈다. 특히 아포칼립스가 고대에 스스로 ‘아문 라’라는 이름으로 행세했다는 대사는 꽤 흥미진진하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태양신을 가장 위대한 신으로 모시면서 모든 자연과 동식물도 신으로 섬긴 각종 기록이 남아있다.
테베의 바람과 공기의 신이 아문이고 이집트 전체를 아우르는 태양신이 라였다. 이 둘이 합쳐져 아문 라라는 신이 됐다는 게 이집트 신화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운영하는 영화제작사 이름이 아문 라다. 이는 아포칼립스가 마치 중국 무협지의 흡성대법 같은 의식으로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빨아들여 업그레이드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두 신이 합쳤으니 그 능력 또한 최소한 2배는 넘을 것이니.
또한 포 호스맨은 요한 묵시록 제6장의 1~8절에 나오는 인물이다. 아포칼립스의 원래 이름이 요한이었거나 현재에 존이라고 명명했다면 그것 또한 재미있었을 뻔 했다.
아포칼립스가 깨어나 양측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진 다소 산만한 건 사실이다. 주인공들이 워낙 많고 지난 2편의 프리퀄은 물론 지난 시리즈까지 모두 설명하고 각 단추를 비교적 합리적으로 끼워 맞춰야하니 시나리오 작가도, 감독도, 편집 감독도 정신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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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겐 이 과정이 지루하거나 머리가 지끈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마니아는 아니더라도 호감을 갖고 2편 이상을 본 관객이라면 이 친절한 가이드가 아주 매끄러울 것이다. 심지어 울버린의 카메오 출연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감독은 전편에 이어 절체절명의 순간 퀵실버가 시간을 정지시킨 뒤 초음속으로 질주하며 동료들을 구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유쾌한 재미를 주는 서비스정신을 잊지 않았다. 3D 팬텀 카메라를 이용해 초당 3000프레임을 담아낸 단 2분은 무려 1달 반 동안 촬영했다고 하니 그 열정이 대단하다.
다만 제목처럼 묵시록 혹은 계시록의 메시지는 그다지 진중하거나 거창하진 않다. 아포칼립스가 고대에 영구집권과 영생을 추구한 것은 당시의 왕들이 다 그랬으니 별로 이상할 게 없지만 현재에서 지구인들이 썩었다고 분노하는 것은 마치 도널드 트럼프나 한국의 고리타분한 노인네들 같아 불편하다. 그건 자신들의 입맛에 안 맞으면 ‘요즘 애들은’이라고 무조건 배타시하고 무시하는 이기적이고 아집에 휩싸인 적지 않은 기득권층과 기성세대를 연상케 한다. 사실 아포칼립스는 절대적인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기득권자였었다.
더불어 시대를 기원전 2850년쯤으로 잡아 아포칼립스를 상 하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해 이집트 최초의 고왕국 제 1왕조를 연 나르 메르(아하) 왕으로 설정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어쨌든 ‘배트맨 대 슈퍼맨’에 실망하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열광한 관객들에게는 ‘역시 마블’이란 평가를 받을 만한 팝콘무비다. 지금까지 별로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사이클롭스의 결정적 한방도 의미가 있다. 키클롭스(Cyclops)는 올림푸스 신들과 티탄(타이탄) 족과의 전쟁에서 올림푸스를 도와 평화를 되찾는 데 기여한 외눈박이 거인 3형제다.
자비에가 왜 대머리가 됐는지, 스톰의 과거는 어땠는지, 왜 첫 엑스맨 시리즈 때 매그니토가 인간의 적이 돼 자비에의 엑스맨 팀과 싸웠는지, 진과 사이클롭스는 어떻게 연인이 됐는지, 그리고 엑스맨 팀은 어떻게 꾸려지게 됐는지 그 답도 담겨있다. 12세 이상 관람 가. 오는 25일 개봉./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엑스맨' 스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