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천우희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나홍진 감독과의 영화 작업을 "징글징글했다"고 표현했다. 천우희의 과격한 표현은 결과물을 볼 때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오늘(26일) 500만 관객을 넘긴 '곡성'은 나홍진 감독의 꼼꼼한 연출력과 창의력이 빚어낸 수작으로, 보고 난 관객들을 여러 갈래 해석의 늪에 빠지게 하는 마성으로 유명하다.
제69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도 초대된 이 영화는 현지 관객 및 외신들에도 극찬을 받았다. 공식 상영회가 끝난 후 SNS에는 "곡성은 칸 영화제 중 나에게 첫 경탄을 줬다", "내가 본 최고의 미친 한국 영화" 등 해외 관객들의 감상평이 게재됐고, 해외 유력 언론들도 "2016년 칸 영화제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걸작"(메디 오마이스) 따위의 호평을 쏟아냈다.
현재 '곡성'은 북미 지역에서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유럽 및 아시아 각국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에서의 흥행 성공과 해외영화제에서의 호평 세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곡성'의 성공 비결은 뭘까? 뭐니뭐니해도 나홍진 감독의 타협없는 고집이 큰 몫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금의 '곡성'이 나오기까지 이 "징글징글"한 감독이 소신있게 끌고 온 세 가지 선택을 정리해봤다.
1. '19금 전문'이라고? 이젠 15세 관람가
6년 만의 신작. 나홍진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부터 '곡성'을 15세 관람가로 설정해 놓고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전작인 '추격자'나 '황해'는 모두 일명 '19금(禁)', 19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였는데 살인이나 폭력 등에 대한 사실적이면서도 잔인한 묘사와 선정성 때문이었다. 사실 '19금'은 나홍진 감독이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나 연출 방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스릴러 장르 연출에 탁월한 그는 장르의 특성상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실적인 묘사를 택해왔고, 그 결과는 항상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날 '황해'를 보고 얼굴을 가리는 여성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바꿨다. 나홍진 감독은 "내가 좋은 날 관객들에게 무슨 일을 한 건가 싶었다"며 "'황해'는 크리스마스였는데 '곡성'은 5월 개봉이다. 가정의 달이다. 그래서 이번 '곡성'은 직접적인 묘사는 될 수 있으면 피했다. 시나리오 작업 단계부터 15세 관람가를 염두에 두고 찍었다"고 자신의 선택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것은 현재 '곡성'이 이루고 있는 흥행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나홍진 감독은 OSEN에 자신의 영화를 본 십 대 관객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진짜 기분 좋더라. 처음 경험하는 거였다. 걸그룹 볼 때의 느낌이 이럴까? 이 친구들을 생각하고 영화를 만드는구나 싶고, 관심을 가져야하는구나 싶더라"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2. 주연 곽도원, 조연 황정민?
영화에서 배역의 중요도는 티켓파워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바꿔 말해 티켓파워가 높은 사람이 주요 배역을 맡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곡성'의 주, 조연은 뒤바뀌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지난해 '국제시장'과 '베테랑'의 성공으로 '쌍천만 배우'라는 별명을 얻은 황정민이 조연이라고 할 수 있는 무당 일광 역을 맡았고, 영화 '변호인', '타짜-신의 손'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로 활약했던 곽도원이 주인공 시골 경찰 중구 역을 맡았다.
곽도원은 '곡성'으로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다. 나홍진 감독과 곽도원의 인연은 '황해'에서 시작됐는데, 이후 배우로서 곽도원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나홍진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을 찍는 윤종빈 감독에게 곽도원을 추천했다고도 알려졌다.
'곡성'의 주인공으로 곽도원을 택한 이유는 '유연함' 때문이었다. 나홍진 감독은 OSEN과의 인터뷰에서 "대화를 나눠보니 곽도원 배우가 굉장히 다양한 폭의 연기를 해줄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느꼈다"며 "코미디로 시작해서 초자연적인 스릴러로 이어지는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가 다양한 장르를 연기 할 수 있어야 하는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서 곽도원을 가장 적절한 배우로 생각해서 주연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곽도원의 주연 캐스팅을 위해 나 감독은 이를 반대하는 제작사이자 투자사인 폭스인터네셔널프러덕션과 싸워야만 했고, 결국 곽도원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천만 배우' 황정민이 조연으로 서게 된 이유는 뭘까? 나홍진 감독은 이에 대해 "황정민이 조연을 맡았을때 그 임팩트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며 "황정민이 주연을 맡으면 본인의 역량을 조연들을 위해 미뤄주는 것도 알고 있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 나홍진 감독의 선택은 '곡성'의 완"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황정민을 일광 역으로 선택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 그리고 황정민은 이를 증명해보였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3. CG 대신 현장
'곡성'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몰입감에 놀라고 이후엔 영화를 찍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배우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된다.
나홍진 감독은 후반 작업에 기대기보다, 현장에서의 완벽함을 요구하는 연출가로도 유명하다. '곡성'에서도 그런 완벽주의적 성향은 엿볼 수 있는데, 중구의 딸 효진 역을 맡은 아역 배우 김환희의 빙의 연기라던가 중·후반부 등장하는 격투신과 절벽신 등이 그렇다. 웬만해서는 CG로 손을 볼만한 장면들임에도 불구, 이 장면들은 배우들의 일품 연기로 완성됐다.
특히 김환희는 빙의가 돼 몸이 꺾이는 연기를 하기 위해 현대 무용을 6개월간 배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실감나는 모습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완성됐다는 점이 놀라움을 주는 부분.
나홍진 감독의 현장중심주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골 마을 배경의 분위기나 느낌까지도 CG로 표현할 생각은 없었다. 타협없이 적합한 날을 찾아 찍고 또 찍었다. 예를 들어 산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곡성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흐린 날씨를 기다려 살수차를 동원해 비를 뿌려 촬영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산길 국도에서 촬영된 추격신은 실제 비가 내리는 날에 맞춰 촬영을 해야했기에 가을에 시작해 겨울에 촬영을 끝낼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뿐만 아니라 미술과 소품도 완벽함을 위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해골 모양으로 시드는 금어초를 영화에 쓰기 위해 직접 촬영 전부터 재배하고 말린 후 그 중에서도 해골과 가장 비슷한 것만을 골라냈다. /eujenej@osen.co.kr
[사진] '곡성'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