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로 돌아온 배우 하정우를 향해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쏟아낸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그의 연기가 어땠느냐고 살짝 물어보니 역시나 “하정우 잘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감독의 연출력, 촘촘한 시놉도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지만, 연기력을 갖춘 배우의 존재 여부도 중요하다. ‘믿보하’(믿고 보는 하정우) 하정우가 ‘아가씨’에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공식 초청작이었던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영화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그간의 작품인 ‘박쥐’ ‘무뢰한’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들과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 예비 관객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개봉을 일주일여 앞둔 26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하정우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1교시부터 오시느라 고생하셨다”는 농담을 건네며 살갑게 다가왔다. 가장 먼저 예정된 그룹 인터뷰를 마치 수업의 ‘1교시’라고 표현하며 서먹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하정우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성실하게 했지만 본인의 말을 주야장천 늘어놓기보다 기자들의 의견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 것 같아요” “어렵네요”라고 반응하며 소통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아가씨’를 통해 박찬욱 감독과 첫 작업을 했다. “감독님은 마음에 안 들면 될 때까지 촬영을 하는 스타일이다. 가장 많이 갈 때는 16번의 테이크를 가기도 했다. 정말 될 때까지 찍는 분이다. 미세한 부분을 다 잡아내서 그것을 조정하는 부분에 시간이 많이 들었다. 얼굴의 각도까지 다 조정을 하신다. 각자의 작업 방식이 있는 것 아니냐. ‘더 테러 라이브’에선 준비 시간이 60에 현장성이 40이었다면 이 영화는 거의 현장성에서 즉흥적으로 담금질을 했다”고 박 감독의 촬영 스타일에 대해 설명했다.
대사와 표정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박 감독 덕분에 하정우는 마치 아나운서가 스피치를 준비하는 것처럼 디테일하게 표현했다고. “잘못하면 바로 꼭 집어서 얘기를 해주신다. 단어나 조사를 옆에서 체크를 해서 틀리면 다시 가는 식이다. 감정적인 부분은 디테일하게 얘기하시진 않는데 대사나 각도 같은 부분은 정확하게 체크를 하셨다”고 말했다.
하정우표 백작은 연기력은 물론이거니와 그만의 코믹적인 코드도 묻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뭇 여성 팬들에게 결혼하고 싶은 남자, 상남자, 예술가 등 고유의 이미지가 강렬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탐욕 강한 사기꾼의 이미지도 있음을 전달한 것이다.
“감독님이 ‘비스티 보이즈’를 보고 (캐릭터를)변주를 하셨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보기에 똑같다는 느낌이 든 것은 아니다. 관객들도 같은 이미지로 보실 것 같진 않다. 저는 박 감독님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전 영화를 하면서 이 작품으로 승부를 보겠다, 수상을 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새로운 작업 방식에 대한 재미와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그동안 영화 ‘암살’ ‘더 테러 라이브’ ‘군도’ ‘베를린’ ‘범죄와의 전쟁’ 등의 영화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줬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화려한 변신을 감행했다.
영국 소설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아가씨’는 소매치기 집단에서 자란 소녀가 소매치기의 우두머리와 귀족 상속녀를 결혼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속녀에게 접근한다는 내용을 한국적으로 옮겨왔다.
영화의 줄거리는 원작과 비슷한데, 빅토리아 시대가 ‘아가씨’에선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바뀌었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분)과 하녀 숙희(김태리 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그린다.
하정우는 호흡한 배우들의 연기와 태도에 감탄했다고 했다. “태리 같은 경우는 (신인이다보니)감독님이 트레이닝을 많이 시키셨다. 조그만 자리를 자주 마련하면서 배우들, 스태프와 함께 보낼 자리를 만들어주시며 챙겼다. 덕분에 태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에 적응을 했다”고 밝혔다.
또 김민희와의 호흡을 대해 극찬하며 “또래 여배우들을 봤을 때 늘 추천하는 배우였다. 같이 하려다 못한 작품도 있었고. 그런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편안했다.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다가섰고 쓸데없는 농담도 많이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와 눈빛을)주고받는 데 있어 전혀 불편함은 없었다. 워낙 센스가 넘쳐서 작업하기에 좋았다”고 회상했다.
하정우는 “김민희와 현대물에서도 같이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영화를 처음보고 민희에게 ‘너 정말 압도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매력이 많고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는 훌륭한 배우”라고 극찬했다.
데뷔 후 줄곧 영화에만 몰두해온 그는 지난 2007년 3월 방송된 MBC 드라마 ‘히트’가 마지막 작품. 영화에 비해 대중성이 좀 더 높은 드라마에 출연할 계획은 전혀 없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기에 질문을 던졌는데 “완전히 안할 생각은 없다”면서 “아직 작품을 못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고 대답했다./ purplish@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