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열 번째 작품 ‘아가씨’의 영어 제목은 뭘까. 아가씨라는 낱말을 단순히 영어로 옮긴다고 생각했을 때 ‘a young lady’ 정도가 될 듯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어 제목과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handmaiden’, 즉 몸종이다. 대개 영화들이 우리말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거나 극 중 내용과 관련된 말들을 쓰곤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뜻의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박찬욱 감독의 의도는 뭘까.
박찬욱 감독은 27일 방송된 YTN ‘뉴스타워’에 출연해 신작 ‘아가씨’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공개했다. 촬영 현장과 배우들에 대해 언급하는 박 감독의 모습에서 무한한 애정이 느껴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이날 전 세계 176개국으로 수출된 ‘아가씨’의 성과도 언급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목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가씨’, 미국에서는 ‘하녀’, 대만에서는 ‘하녀의 유혹’, 프랑스에서는 ‘마드모아젤(아가씨)’이라는 극과극의 제목으로 개봉되다 보니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이에 박찬욱 감독은 “제가 지은 제목은 영어 제목 뿐”이라며 “‘handmaiden’이라고 해서 몸종이란 뜻”이라고 설명헀다. 그러면서 “여자 주인공이 두 명인데 한국어 제목으로는 아가씨고, 영어 제목으로는 하녀고 이렇게 하면 서로 균형이 맞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아가씨’의 이야기 전개를 봤을 때 이 같은 선택은 매우 영리했다. 극 중에서 각각 아가씨와 하녀로 분한 김민희와 김태리, 두 주인공 사이의 대등한 구도를 제목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포인트다. 계급 사회의 꼭대기와 밑바닥에 존재하는 두 여자가 묘한 이끌림에 평등한 관계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 ‘아가씨’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피트 트레비스의 ‘밴티지 포인트’를 연상케 하는 연출을 보여 주고 있는데, 하나의 사건에 얽힌 다양한 인물들의 시각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낸 덕이다. 이 상반된 제목을 달고 있는 영화를 ‘아가씨’로 보든, ‘하녀’로 보든 수입해 간 나라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점이 작품 그 자체와도 닮았다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제목의 미세한 설정까지 영화와 연결해 완성해내는 박찬욱 감독은 가히 완벽주의자라 할 만했다. 오는 6월 1일 개봉하는 ‘아가씨’를 보면 박찬욱 감독의 영리한 선택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듯하다. /bestsurplu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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