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의 주인공들은 종종 ‘꼰대’라는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려진다. 논리로 밀리면 나이를 들먹이고, 수치심이라곤 없는 듯 행동하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 이 같은 일반화를 허용했다. 그러나 극 중 시니어들을 오랜 시간 지켜봐 온 고현정은 말한다. ‘삶을 한두 마디로 정의하면 코미디가 되고 만다’고. 이들을 서슴없이 꼰대라 부르는 그이지만, 삶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지난 27일 방송된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초등학교 동문회를 통해 조우하게 된 주인공들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동문회라 봐야 어릴적 한 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던 몇몇이 친목 도모를 하는 것이었지만,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도 간단히 꼰대라 불렀던 인물들의 진짜 삶이 한 꺼풀씩 베일을 벗으며 시청자들에게 애틋함을 안겼다.
그간 충남(윤여정 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던 허영은 가족 뒷바라지를 하느라 한평생을 홀로 살던 그의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중학교를 야간으로 졸업하고 육십 명은 족히 딸린 식구들의 입에 한 술 한 술 밥을 넣어주며 살았던 그는 교수들의 술값까지 덤터기를 쓸 정도로 베풀 줄 밖에 모른다. 배우지도, 즐기지도 못했다는 점은 고스란히 충남의 열등감이 되고 약점이 된 탓이다.
폐지 줍는 노인과 길에서 부딪히고는 “그 나이 되도록 이러고 사시냐”며 대놓고 무시를 하는 충남이지만, 그가 같은 노인들을 꺼리는 이유는 정을 나눠볼 새도 없이 자신을 떠나버릴 까봐서였다. 자의로 혼자 산다고 말하면서도 독거사를 가장 두려워하는 충남의 모순은 그의 역사를 알기 전엔 그저 괴팍한 늙은이의 패악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싫은 소릴 입에 달고 살아도 늙고 병든 식솔들을 간병하고, 도자기를 구웠다고 연락이 오면 기꺼이 돈을 내는 바보 같은 충남이 짠했다.
지금까지 손쉽게 한두 마디로 정의됐던 삶은 또 있었다. 난희(고두심 분)는 지금껏 절친 영원(박원숙 분)이 자신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여자 숙희와 희희낙낙 친구 사이로 지낸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돌연 미국으로 떠났던 영원은 갑상선암에 유방암, 난소암까지 앓으며 기댈 곳이 없어 숙희에게라도 의지했던 것이었다. 오랜 세월 입어 왔던 몸과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는 영원에게 난희는 끝까지 “유부남이랑은 왜 지저분하게 그러고 살아. 그래서 병 걸린 거야. 천벌 받은 거야”라고 쏘아 붙이지만 그의 눈에서는 후회의 눈물이 쉼없이 흘렀다.
세월 만큼 두껍게 쌓인 오해들은 점점 풀려 나갔다. 어느새 불행자랑대회처럼 변해 버린 동문회에서도 으레 그러하듯 감정이 상해서 하나둘 자리를 박찼던 꼰대들이었지만, 한두 마디 정도로 생각했던 타인의 삶에 줄을 더해가며 화해를 해 가고 있었다. 나이만 들었지 어른이 되지 못했던, 어쩌면 이해 없이 남의 삶을 판단하던 젊은이들의 미래 모습 같던 이들이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 황혼 성장담은, 매주 시청자들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디어 마이 프렌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