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가 ‘아가씨’에서 맡은 역할은 백작으로 김민희의 재산을 가로채려고 설계하는 사람이다. 하정우의 사기꾼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정우는 호스트로 때로는 전 여자친구에게 돈을 빌린 한량을 연기하며 관객의 마음을 훔친 바 있다.
1일 개봉한 ‘아가씨’는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보호 속에서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히데코(김민희 분)와 그의 재산을 뺏기 위해 하녀 숙희(김태리 분)를 보낸 백작(하정우 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3부로 구성돼있으면 같은 사건을 다른 주인공의 시점에서 보여주며 색다른 구성을 통해 영화적인 재미를 극대화했다. 무엇보다 동성애와 노출 그리고 반전이라는 파격적인 수식어에 가려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영화다.
하정우가 연기한 백작은 4명의 주인공과 모두 관계를 맺으며 능수능란하게 거짓말과 진실을 꺼내놓는다. 무엇보다 가진 것도 배경도 없는 백작이 일본 귀족으로 변신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때론 우습게 때론 슬프게 다가온다.
백작 이전에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이 있었다. 윤종빈 감독과 힘을 합친 ‘비스티 보이즈’에서 재현은 호스트로 일상이 거짓말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애정을 돈으로만 보는 최악의 인간이다. 재현은 사람의 밑바닥까지 모두 드러내며 호감은 아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전도연과 호흡을 맞춘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에서 연기한 병운은 묘한 분위기를 가진 사내였다. 병운은 빌린 돈을 갚으라고 찾아온 전 여자친구 희수(전도연 분)와 돈을 빌리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병운은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할만한 상황에서도 때론 거짓말로 때론 따스하게 상대방을 대하며 묘한 매력을 보여줬다. 찌질하고 한심하게 보인 병운이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멋지게 보이는 것은 그 어떤 배우도 아닌 하정우의 힘이다.
배우로서 하정우는 확실히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재주가 있다. 하정우는 사기를 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연기를 하든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멋진 모습을 연기하든 김을 먹는 모습을 연기하든 한결같다. ‘아가씨’ 관객들은 그런 하정우의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져들 것이다. /pps2014@osen.co.kr
[사진] 각 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