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에서 정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강한 존재감을 발하는 인물이 있다. 극 중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의 이모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문소리다. 문소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영화의 속 그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주인공인 김민희 못지않다.
박찬욱 감독이 문소리를 '아가씨'에 캐스팅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문소리와는 과거 동생 박찬경 감독과 함께한 단편 영화 '파란만장'으로 한 차례 인연을 맺을 뻔했다. 하지만 영화의 첫 촬영날 문소리로부터 "임신을 했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계획은 무산됐다.
박찬욱 감독은 최근 OSEN과의 인터뷰에서 "첫 촬영이 극 중 오광록과 낚싯줄에 연결돼 진흙탕에서 뒹굴고 그런 걸 찍는 거였다. (임산부에게)그건 미친 짓인 거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그걸 모르고 찍었으면 큰일 났을 거다. 그래서 그때 함께 일을 못 하게 된 것"이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문소리와의 작업은 박찬욱 감독으로서도 오랫동안 고대했던 일이었다.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을 보고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 박찬욱 감독은 "이제야 나도 문소리와 함께 영화를 한 번 찍어본다고 했는데 그렇게 됐었다"고 당시의 아쉬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문소리라는 배우에 대한 관심은 동생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을 보고 더 강렬해졌다. 박찬욱 감독은 "문소리가 거기서 나온 걸 보고 정말 좋았다. 한 장면을 볼 때 눈물이 나더라. 그 장면만 따로 더 볼 만큼 나에게는 참 충격적인 영화였다"라며 "(극 중 문소리가)무당인데 굿을 해주러 갔다가 새마을 운동 시기에 무속을 범죄 취급하는 바람에 도망을 가서 산 속에 악사, 조수들과 피신을 갔는데 '놀면 뭐하냐'는 식으로 즉흥적으로 굿을 시작하는 신이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흥겹기도 하고 놀랍더라.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의 비밀병기로 문소리를 캐스팅했다. 그는 "역할이 크진 않지만 중요한 배역이니까 (문소리에게) 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다행히 특별 출연 형식으로 받아들여져서 함께 영화를 찍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본인은 4회 촬영으로 끝났다. 서로를 더 잘 알고 무르익어 갈 무렵에 끝나서 아쉬웠다"고 문소리와 영화를 찍은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래도 예를 들면 코우즈키(조진웅 분)가 얼굴을 손에 쥐고 흔드는 짓거리를 할 때-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그 장면이 훨씬 더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다-그걸 할 때도 되게 힘들어보이지만, 문소리가 한(머리를 흔든) 거다. 자기가 한 거다. 조진웅은 손을 얹고만 있고, 문소리가 머리를 흔들어 폭력적인 장면으로 만든 거다"라고 말했다.
또 "얼굴을 놔줬을 때, 얼굴에 드러난 모욕받은 기분, 그런 기분도 잘 드러났다. 몰락했지만 일본 귀족의 딸인데, 내색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닌 것처럼 책을 뚫어지게 들여다 볼 때, 그런 연기는 소름이 끼치더라"며 문소리의 완벽한 연기를 칭찬했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아가씨'는 개봉 첫날 28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예감케 했다. 그가 만든 작품 중 가장 "상업적"이라고 평가 받는 이 작품이 일반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1일 개봉했다. /eujene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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