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배 나오고 머리도 다 빠진 늙은이도 사랑을 한다고. 그거야말로 진짜 로맨스지."
한낮 서울 온도가 30도까지 치솟는 요즘, 배우 주현(73·본명 주일춘)은 이른 더위 속 이뤄지는 야외촬영에도 불평 한마디가 없다. 매니저가 건넨 초콜릿 아이스크림 하나에 '허허' 웃으며 10분 남짓한 휴식을 즐길 뿐이다. 데뷔 46년 차 배우 주현의 얘기다.
지난 5월, tvN 금토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촬영이 한창인 서울 근교의 성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극 중 '할배 로맨스'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주현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촬영. '힘에 부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게 힘들면 배우 못해"라고 말하는 주현의 연기 열정 만큼은 여전히 '청춘'이었다.
중견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 앞세운 '디어 마이 프렌즈'는 노희경 작가의 신작으로 신구 윤여정 김영옥 주현 김혜자 나문희 등 국내 영화와 드라마에 한 획을 그은 내로라할 배우들이 모두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가운데 주현은 극 중 전직 변호사로 아내를 먼저 보내고 우연히 만난 첫사랑 조희자(김혜자 분)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70대 로맨티스트 이성재 역을 맡아 연기 중이다. 이날도 어김없이 두 사람의 데이트(?) 장소인 성당에서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를 만나 작품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주현: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얼마든지 하고야 싶지만, 내 나이가 되어서 보니 작품이 잘 들어오지 않아. 아빠 역할은 나보다 젊은 친구들이 모두 꿰찼지. 그렇다고 항상 들어오는 뒷방 노인네 역할은 그만하고 싶더라고. 지금 보면 우리 나이 배우들은 항상 똑같은 역할만 주어지는 것 같아.
-김혜자와 친근한 분위기에서 촬영을 이어가던데 평소 친분이 두터운가
주현: 나랑 김혜자, 그리고 tvN은 인연이 깊지. 과거 CJ 제품 광고를 김혜자와 10년 넘게 같이 한 적이 있어. 정말 첫사랑이네 하하하.
당시 광고에서도 부부 역할로 혜자랑 같이 했었어. 이번에도 이렇게 만나는 거 보면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 봐. tvN도 마찬가지고. 예전에 '꽃미남 라면가게'에 출연한게 인연이 되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
-노희경 작가와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주현: 노희경 작가가 데뷔작을 나랑 같이 했지.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나는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해. '아름다운 이별'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가슴이 울컥해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었지. 그런 시나리오는 그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인거 같아.
그 이후로 죽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지. 노 작가는 꾸며내거나 인위적인 이야기가 아닌 주변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나가는데 굉장히 좋은 작가라고 생각해. 데뷔작 외에도 여러 작품을 함께 했었지. 그런데 중간에 나랑 노희경이랑 싸웠어(웃음). 그리고 내가 좀 삐져서 한동안 안 보다가 '디어 마이 프렌즈'로 다시 만나게 됐지.
-이성재 역할은 실제 본인과 비슷한가
주현: 나는 휴대전화로 문자도 못 보내는 사람인걸. 지금도 쓰는 휴대전화가 폴더야, 이것 봐. 성재랑은 전혀 다르지(웃음). 내가 집에서 얼마나 잘하느냐고? 나 말고 아내한테 물어봐!
처음에 노희경 작가가 '선생님께 배역을 드려야 하는데 이성재 역할은 배 나오고 대머리면 곤란한데?'이러더라고(웃음). 그래서 노희경 작가에게 '야, 머리 까지고 술에 절어살고, 배도 많이 나온 사람이 하는 사랑이 진짜 로맨스야. 내가 보여줄게'"라고 했어(웃음).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잘 생기고 예쁘고 젊은 애들이 하는 사랑보다 이런 게 진짜 사랑이지.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 중인가
주현: 여기서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다 '능구렁이'같은 전문가들이야. 입 모양만 봐도 '저 사람이 뭘 원하는구나' 알 수 있지. 오래 봐왔잖아. 갈등이나 힘듦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막내 고현정은 내 생일날 집으로 꽃 화분을 보내주기도 했어. 참 싹싹하지. 생전 처음 받아보는 선물이 꽃인데(웃음). '디어 마이 프렌즈' 덕분에 요즘 굉장히 즐거운 삶을 사는 것 같아. /sjy0401@osen.co.kr
[사진]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