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성인연기자보다 낫다는 말도 이제는 칭찬이 아니라 실례일 듯 싶다. 아역스타들은 이제 하나의 기능적인 역할이 아닌 화면을 잡아먹는 존재감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600만 관객을 목전에 둔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의 김환희(13)가 그랬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효진(김환희 분)이가 다 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에 깊이 감동한 바이다. 귀신 들린 연기를 그야말로 귀신같이 해냈기 때문. 갑자기 아빠(곽도원 분)를 향해 돌변한 눈빛으로 욕설을 내뱉고, 몸이 뒤틀리는 연기도 선보였다. 이에 김환희는 요즘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정말 괜찮아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고 있다.
“트라우마 없었냐고 물어보시는데 전혀 없어요. 나홍진 감독님도 곽도원 아빠도 장소연 엄마도, 주변 분들이 많이 챙겨주셔서 잘 찍을 수 있었어요. 배역에 빠져서 힘들거나 하진 않았어요. 촬영 끝나고 나선 다시 본연의 제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해맑은 웃음과 조곤조곤 자신의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 기자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김환희는 올해 2002년생. ‘곡성’을 촬영할 당시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사이 벌써 3년이 흘렀고, 하마터면 못 볼 뻔한 영화도 VIP 시사회를 통해 직접 볼 수 있었다.
김환희는 효진 역을 연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고생도 참 많이 했다. 몸을 꺾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안무가와 동작을 미리 잡아가는 연습이 필요했고, 갑자기 생선을 폭식하는 장면도 처음에는 맛있게 먹다가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도 소품팀 스태프들이 자신을 위해 생선을 굽고 뼈를 발라주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다는 이 속 깊은 소녀를 보니 마음 한쪽이 뭉클해졌다.
“솔직히 고생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안무가 선생님과 몸을 꺾는 연습도 했는데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진짜 디테일하게 안무처럼 하나하나 틀을 잡았거든요. 유연해야 하니까 요가 같은 것도 숙제로 내주셔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숙제 검사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옆에서 감독님을 비롯해 모든 스태프 언니 오빠들이 많이 챙겨주셔서 배역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었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완성된 ‘효진’을 보고 자신도 무서웠다고 했다. 김환희는 극중 아빠 역으로 나오는 곽도원을 향해 욕을 쏟아 부어야 했다. 이 대사는 사실 대본에는 없던 것이라고. 현장에서 나홍진 감독이 욕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에 만들어진 장면이다.
“감독님이 ‘욕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라고 물어보시면서 알려주셨어요. 그냥 욕하라고, 귀신 들려서 그러는 거라고 하셔서 그걸 듣고 제가 막 욕했죠. 곽도원 아빠도 저를 보고 섬뜩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모니터링하면서 섬뜩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헤헤.”
타고난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지면 무서운 위력을 내뿜는다는 걸 김환희를 보면서, 그녀가 완성한 ‘효진’을 보면서 실감하는 요즘이다. 처음은 어머니가 올려준 돌사진 콘테스트를 통해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스스로 진로로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의 연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면서다. 지금은 평생 직업은 연기자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천하무적 이평강’(2009) 때부터 전혀 바뀜이 없었어요. ‘이걸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던 적도요. 영화감독도 겸해볼까 욕심내서 생각해본 건 있어요. 그래도 배우라는 건 틀림없이 쭉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요? 영향력 있는 배우요. 음, 제가 급식을 먹을 때마다 급식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꼭 드리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받아가던 친구들도 몇 달 후부턴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나중에 제가 선을 행하면 다른 사람들도 선을 행할 수 있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besodam@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