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배우에게 영화배우란 단어는 경우에 따라선 매우 특별한 의미가 개입된다. 미국 유럽도 요즘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배우들이 영화와 드라마의 영역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넘나들 정도로 드라마의 완성도와 제작비가 영화와 동등한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아무래도 예술성이란 자존심이 작용하는 면에선 영화가 변별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독립영화 감독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로 활약했지만 한때 마약에 빠진 시기의 앞뒤에 걸쳐 TV 드라마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배우고, 그래서 개런티가 천문학적이다.
현재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50대(한국나이) 남자배우라면 최민식(55) 송강호(50) 김윤석(50)이다. 세 명 모두 연극무대를 통해 연기의 기초를 닦은 뒤 충무로의 두말할 나위 없는 원톱이 됐다. 최민식이 제도권 진입을 위해 한때 드라마에 집중했고, 황정민이 잠깐 외도(?)하긴 했지만 현 시점에서 그들을 드라마로 끌어들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안성기는 단 한 번의 드라마 예능 등의 오락 목적의 TV출연이 없는 순수혈통의 영화배우로서 앞으로도 절대 드라마에 출연할 일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사진> '특별수사' 스틸
영화 ‘타짜’로 스타덤에 오르는 동시기에 아침드라마에 출연 중이었던 김윤석은 지금은 오로지 영화에만 매진 중이다. 그는 지난해 6월 ‘극비수사’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홍보차원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못한다’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할 수는 있지만 해봐야 예능인들에 비해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므로 ‘민폐’일 따름이란 얘기다.
오는 16일 개봉되는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권종관 감독, NEW 배급)의 주인공 김명민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역시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없어서 ‘못하고’(능력부족), 예능인들의 밥그릇을 빼앗기 싫어서 ‘못 한다’(불가능)고 했다.
김명민은 지난해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의 홍보를 위해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적은 있다. 예능이 아니라 시사보도 프로그램이다.
그는 20년 전 TV 드라마로 배우를 시작했지만 성공할 기미가 안 보이자 은퇴하고 이민을 떠날 결심을 했다. 그럴 즈음 들어온 작품이 바로 탤런트 김명민 하면 떠오르는 ‘불멸의 이순신’이었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며 모든 배우가 그렇듯 자연스레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고 연기파 배우 중 비교적 영화와 드라마 사이를 물 흐르듯 매끄럽고 용의주도하게 오가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조선명탐정' 스틸
한때 영화배우가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금기사항이었고 지금도 일부 영화배우나 영화인 사이에선 금과옥조다. 물론 영화도 상업활동이긴 하지만 그나마 예술적 작가적 정신을 지키는 데 비교해 TV는 본격적인 돈과 인기를 좇는 행위란 영화인들만의 아집 혹은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장편상업영화의 주조연 배우라면 영화의 홍보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게 당연한 책무다. 억대의 출연료를 받기 때문에 캐릭터의 표현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다 찍은 후에도 영화가 막을 내릴 때까지 어떻게든 도움이 돼야하는 게 동서고금의 영화계를 잇는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윤석과 김명민의 소신은 나름대로의 이유와 철학이 존재하는 이유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그를 펼친 적은 없다. 강동원은 ‘검사외전’에서 오두방정을 떨었을망정 예능에 얼굴을 내민 적 없다.
김윤석은 그게 신비주의 작전은 아니라고 했지만 미필적 고의의 신비주의가 맞다. 그런데 그건 예의 없는 건방짐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예의다. 만약 어떤 스타가 주인공인 영화가 상영 중인데 동시에 드라마에도 그가 나온다면, 혹은 수시로 예능에서 볼 수 있다면, 영화가 아주 특별하지 않는 한 일부러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한 뒤 지인을 만나 2만 원 이상의 돈을 써가면서까지 그 영화를 관람할 이유가 부족하다.
얼핏 봐선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방식이나 콘텐츠 자체는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대중에겐 이를 각자 관람하는 차이점이 있다. 드라마는 습관에 가깝다. 그리고 흥미 위주고 약간의 천박하거나 외설적인 접근방법이 있다.
영화 역시 관능적인 심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지적인 허영심과 문화적 놀이라는 예술과 문명을 향한 욕구가 중심축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명민은 굉장히 명민(총명하고 민첩)한 배우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시기를 잘 판단하는 총명함을 갖춘 동시에 언제 그걸 행동에 옮겨야 하는지 민첩하게 몸을 움직일 줄 안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는 간격에 대한 공간 감지 능력 또한 뛰어나다. 그가 나오는 영화는 흥행과 완성도에서 혹평이 없고, 드라마의 시청률은 안정되며 혹시 시청률 꼴찌를 하더라도 화제성만큼은 잡는다. 시나리오(대본)를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사진> '드라마의 제왕' 스틸
‘극비수사’는 형사 공길용(김윤석)과 도사 김중산(유해진)이 유괴된 한 소녀를 찾기 위해 애쓰는 내용이다. 이런 소득 없고 잃을 게 많은 게 뻔한 일에 뛰어든 이유를 길용이 중산에게 묻자 ‘소신’이라고 또렷하게 땅 위에 쓴다.
김명민의 예능출연 불가방침은 신비주의가 맞지만 그건 영화를 위한 소신이지 관객에 대한 몰상식은 절대 아니다. 공교롭게도 ‘특별수사’에도 이 소신이 강하게 적용된다.
필재(김명민)는 모범경찰 할아버지와 상습 전과자 아버지란 특수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범죄자에 대한 혐오감이 극에 달해 경찰이 된 후 오로지 법의 규정의 일직선을 꼿꼿하게 걷다 불의의 사고로 해고된 뒤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건 브로커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피의자들을 찾아가 명함을 건네며 형량을 낮춰주거나 심지어 풀려나게 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챙겨내는 상습 위법자로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형수의 편지를 받은 뒤 급변한다. 그로선 신성불가침 수준인 한 재벌그룹 사모님의 신권을 연상케 하는 이기적인 지휘체계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죽이려 하는 것을 알고 이 무모한 싸움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든다.
‘베테랑’에서 서도철(황정민)은 재벌의 비리를 싸고도는 동료 형사에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체면)가 없냐”고 일갈한다. 필재는 경찰이 아니라 그 반대편의 브로커임에도 불구하고 사모님을 압박하고, 이에 그를 회유하기 위해 사모님이 내민 돈봉투를 소 닭 보듯 외면하며 전쟁을 선언한다. 그건 필재의 그리고 영화배우 김명민의 소신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