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는 밝고 당찬 '아가씨'지만, 스스로는 걱정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고 했다. 감독이나 선배 배우들은 주눅들지 않고 연기를 잘 해낸 그를 기특해 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 모든 것이 노력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 했다.
'아가씨'에서 김태리가 맡은 역할은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과 손잡고 부잣집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가는 숙희 역할이다.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역할을 따낸 그는 사실은 영화를 찍는 동안 너무 힘들어 숙소에서 울었던 적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저에게 짜증 나서 운 적은 많아요. 답답하고 그러면 잘 울거든요. 숙소에서 혼자서 눈물 삼키고는 했죠. 제가 마음이 많이 소심해서요. 주눅 들지 않고 잘했다고 봐주시지만, 촬영 끝나고 내가 너무 못한다고 느껴질 때, 외롭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누가 못해서가 아니라 심적으로 외로움이 들 때가 많았어요. 지방 촬영도 많고, 그럴 때 조금 눈물을 삼켰었죠.(웃음)"
김태리만의 마인드 컨트롤법은 '나는 못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거였다.
"제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못해도 된다는 심정으로 버텼어요. 처음이니까, 그거 알고 캐스팅 하신 거니까,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심적으로 스트레스가 오면 그런 식으로 희석했어요."
정작 많은 사람이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하는 '베드신'이나 동성애 연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찍은 '베드신'이 편집을 마치면 어떤 장면으로 바뀔 지가 많이 궁금했다고.
"(베드신)은 두려움이 전혀 없었어요. '동성 베드신'에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게 딱히 여자, 여자니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건데,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하는 생각을 가질 것도 없었어요. 시나리오상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동성애 물이다' 이런 생각 없이 작품에 임했죠."
극 중 김태리가 가장 공을 들인 신은 롱테이크 신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숙희가 아가씨의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아가씨의 방에서 찍은 그 장면이 굉장히 길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촬영에 임했단다. 가장 어려운 신은 역시 초반에 찍었던 장면들이다. 첫날에는 별 긴장이 없어 안도했다 두 번째부터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고.
"처음에 일본에서 찍은 장면들이 은근히 긴장이 안 되더라고요. 일본 첫 촬영은 달리는 신이었는데, '그래도 첫 신인데 쉬워서 다행이다'이랬어요. 그런데 다음날 바로 다음으로 예정된 장면이 앞으로 당겨져 왔어요. 거기서 '멘붕'이 시작됐죠. 다들 첫 날은 '괜찮네' 하고 넘어가는데 둘째 날부터 '멘붕'이 시작될 거라고 그러셨는데, 정말 그랬고 힘들었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곘고, 하는 게 다가 아닌 것 같고, 확신이 안 들더라고요."
사실 '아가씨'의 촬영 현장은 여느 배우가 쉽게 경험해 볼 수 없는 현장이다.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박찬욱 감독은 촬영을 매우 꼼꼼하게 준비하기로 유명하고, 이는 배우들이 오로지 자신의 연기에만 집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김태리가 역할을 위해 '아가씨' 팀을 따라 준비한 것도 여러가지인데, 아기를 돌보는 법이나 피부 표현을 위한 태닝 등을 먼저 제안하고 준비해준 것도 '아가씨' 쪽이었다. 그래서일까? 김태리는 앞으로 자신이 경험할 것들이 '아가씨'보다 더 좋지는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저 닥치는 상황에 충실하겠다며 신인다운 포부를 드러냈다.
"'아가씨' 팀이 너무 좋았던 게 배우가 필요한 걸 다 섭외해서 만들어 주는 거였어요. 아기 다루는 법, 일본어는 말할 것 없고 모든 게 체계적으로 준비가 다 돼 있었죠.(생략) 앞으로의 현장이 지금같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잘 하고 있어요. 그냥 닥쳐오는대로 잘 적응해야지 하는 마음입니다."/eujenej@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