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름만 되면 납량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점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얀 소복을 입고 산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귀신들이 갑자기 등장하면 놀라 움츠려들었던 시절, 그때는 그랬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장한 블록버스터 영화에 익숙해진 2000년대 들어 어설픈 분장이나 어색한 컴퓨터 그래픽을 입힌 공포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것에 비해 시장의 호응이 높지 않자 납량 드라마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귀신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간혹 나오긴 해도 공포물이 아닌 로맨스물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끔 자료 화면으로 등장하는 납량 드라마가 생경하고 반가운 요즘이다.
# 공포물의 전설, ‘전설의 고향’
KBS가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매주 만들었던 ‘전설의 고향’은 한국 공포물의 시초와 같았다. KBS는 1996년부터 1997년, 그리고 2008년과 2009년에 ‘전설의 고향’을 특집성으로 방영했다. 사랑에 목말라있는 인간이 되고 싶은 천년 묵은 여우의 이야기인 ‘구미호’와 ‘내 다리 내놔’라는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 대사의 ‘덕대골’이 인기 이야기였다. 1996년에 방영돼 이광기의 ‘내 다리 내놔’라는 대사를 안방극장에 남긴 ‘덕대골’과 한혜숙, 장미희, 선우은숙, 송윤아, 고소영, 박민영 등 숱한 여배우들이 거친 ‘구미호’ 편은 ‘전설의 고향’의 상징 같은 이야기다. 병든 남편을 치료하기 위해 시체의 다리를 잘라 도망가는 부인을 쫓아오던 외발 귀신의 공포는 안방극장을 떨게 했다.
# ‘M’, 공포물에 사회문제를 담다
‘전설의 고향’과 함께 납량 특집 드라마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1994년 방영된 이 드라마는 심은하가 출연했고 시청률 50%를 넘겼다. 낙태된 아이의 영혼이 빙의가 이뤄지면서 벌어지는 초능력을 다룬 이야기는 낙태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을 이뤄낸 드라마였다. 특히 특수 효과로 심은하의 눈을 초록색으로 만들거나,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가 덧입혀지는 등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 전개와 화면 효과는 드라마 역사에 길이 길이 남고 있다. 지금은 은퇴한 심은하의 연기를 평할 때, 그리고 드라마 컴퓨터 그래픽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M’인 것.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가 가득한 실험적인 드라마였고 심지어 초대박의 인기도 끌었다.
#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었던 ‘혼’
MBC가 2009년 방영한 10부작 드라마 ‘혼’은 그동안 공포 드라마가 꾀했던 권선징악의 주제를 살짝 넘어선 실험 정신이 돋보였던 드라마였다. 큰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학원폭력과 자살 문제 등을 건드리며 공포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억울하게 죽은 혼이 빙의된 여고생의 힘을 도구로 절대악을 응징하던 범죄 프로파일러가 결국 악마가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서진이 주연을 맡았고, 신인 배우 임주은과 티아라 멤버 지연이 연기 도전에 나섰다. 젊은 감각의 이야기가 돋보였지만 다소 산으로 가는 전개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이야기와 상관 없이 티아라 노래인 ‘거짓말’이 흘러나와 드라마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 jmpyo@osen.co.kr
[사진] KBS, 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