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KBS2 수목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이하 ‘국수의 신’)이 2일 시청률 8.6%(닐슨코리아)로 경쟁작 MBC ‘운빨로맨스’(8.2%) SBS ‘딴따라’(8.1%)를 제치고 드디어 1위에 올랐다. 물론 0.5%포인트 차이는 큰 의미가 없는 데다 세 편 모두 한 자리 수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점 역시 부정적이긴 하지만 ‘국수의 신’ 자체는 의미가 꽤 크다. 그 이유는 이 드라마가 ‘제빵왕 김탁구’ 같은 음식이 주인공이 아닌, 제목과는 다른 심장이 쫄깃해지는 내용들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안방극장에서 음식 혹은 요리는 가장 각광받는 시청률의 촉매제다. 드라마건, 예능(‘3대천왕’)이건, 다큐멘터리(‘한국인의 밥상’)건 가리지 않고 음식과 요리사들을 소재 혹은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드라마 역시 일찍이 파티쉐라는 다소 생소했던 용어가 제과제빵사라는 것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 뒤 바리스타 셰프 등 음식과 음료 등을 다루는 전문가들을 대중의 보편적인 관심권 안에 끌어들였다.
‘식객’이 영화와 드라마로서 성공을 거둔 것도 좋은 예다. 그래서 ‘국수의 신’이 예고될 때만 하더라도 한중일 등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에서 특히 각별한 존재인 국수에 대한 서민적 토속적 관점뿐만 아니라 궁중요리로서의 신세계까지 다루는 ‘먹방’ 혹은 ‘쿡방’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됐다.
그런데 첫 회부터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실망(?)시켰다. 면장들의 치열한 레시피 대결이 벌어짐으로써 재래시장의 잔치국수부터 어죽의 하나인 털레기국수, 혹은 조선의 왕이 먹던 골동면까지 화려한 면의 향연이 펼쳐질 것을 예상한 시청자가 많았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극장에서나 볼 법한 잔인한 복수극이었다.
중간쯤 달려온 지금도 다를 바 없다. 화면은 시종일관 어둡고 주인공들은 저마다 어릴 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각자 간직한 상처를 치유하거나 보상받기 위해 이중-삼중의 삶을 살아간다.
가장 가깝고 아껴야 할 보육원 죽마고우들은 어쩌면 부모의 원수라는 악연으로 얽히고설켜있으며 부와 출세라는 목적을 위해서 오래 전부터 살인과 폭행 혹은 이의 교사를 밥 먹듯 해온 악의 축 김길도(조재현)가 무명(천정명)의 철천지원수임에도 친구 태하(이상엽)는 사랑하는 여경(정유미)을 위해 그의 수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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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기존 드라마의 고집스러운 흥행의 법칙에서 다소 어긋나는 점이 이 드라마의 마니아를 만들어낸다. 재미없다는 시청자도 있지만 재미있다는 시청자들의 충성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그 가장 큰 배경은 이 드라마의 구조다. 한마디로 코미디 빼곤 모든 장르 드라마의 요소를 집대성한 종합선물세트다.
선악의 구분을 배제한다면 사실상 주인공은 길도다. 젊은 시절 살인을 저지른 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마산 최고의 궁중국수 대면장 고대천(최종원)의 무녀독남 고강숙(이일화)과 결혼한 뒤 대면장 자리에 올라 서울에 대형식당 궁락원을 차린 뒤 이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동시에 국회의원이 될 꿈을 키우고 있다.
방송국 아나운서이자 궁락원 홍보실장인 도현정(손여은)과 드러내놓고 연인사이임을 알릴 정도로 이미 강숙과는 적대적인 쇼윈도 부부고, 심지어 식물인간이 된 대천을 죽이기 위해 링거병에 각시투구꽃 뿌리 추출물을 지속적으로 주입해왔다.
무명 여경 태하 길용(김재영)은 보육원 출신 친구다. 19살 때 여경은 길도가 사주한 보육원장의 강간을 피하기 위해 그를 죽였고, 태하는 대신 범인이 돼 감옥에 간 뒤 살인자 아버지처럼 독하고 강한 남자로 성장해 어쩔 수 없이 길도의 밑으로 들어갔다.
여경은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간 태하의 부탁대로 검사가 됐고, 절대적 미각을 지닌 무명은 부모를 죽인 원수 길도에게 복수하기 위해 궁락원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들과 동갑내기인 비밀을 간직한 김다해(공승연)와 길도에게 호의적인 음식 평론가 설미자(서이숙)가 변수로 작용할 것을 계속 암시한다.
마산의 국회의원 최의원(엄효섭)은 길도의 돈줄이고, 정치군인 출신의 5선 의원 소태섭(김병기)은 궁락원을 삼키기 위해 길도와 대결구도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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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길도의 뒤를 봐주는 조폭 두목 도꾸(조희봉) 역시 무명의 편에 설 가능성을 솔솔 풍긴다.
궁락원은 그냥 식당이라기 보단 차라리 하나의 제국이다. 거기엔 저마다의 야욕을 불태우거나, 나름의 장인정신을 신념으로 살거나, 뭔지 모를 음모를 기준으로 움직이거나, 그냥 생계형으로 버릇처럼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이 존재한다. 그 주변 역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천차만별의 인간들이 있다.
시작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저마다의 꿈을 이룰 미래를 바라보는 네 명의 청소년들의 성장드라마였지만 어느덧 치열하다 못해 잔인하고 비열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이전투구에 휩쓸려 거센 회오리바람을 맞거나 그 속에 들어가 저마다의 인생철학에 눈뜬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의 사랑과 생존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태섭은 전형적인 여당 실세 국회의원 같은 캐릭터로 묘사된다. 일찍이 정치군인이었던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나서도 역시 검찰을 쥐고 흔드는 가운데 야무진 스타일의 여경을 눈여겨본 뒤 검찰 수뇌부를 움직여 그녀의 출셋길을 열어준다. 자신의 수족 혹은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서다.
거의 모든 드라마는 작가가 헤게모니를 쥐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는 의외로 연출이 완성도와 재미 그리고 변별성을 좌지우지한다. 시종일관 어두운 톤으로 진행되는 그림은 드라마로선 시도하기 쉽지 않은 스타일이지만 각 시퀀스가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나름의 미장센도 존재함으로써 어두워도 시청자의 시선은 꽉 차게 만든다.
지금까지 드라마는 사운드라면 주제곡에 집착하는 경향이었지만 이 드라마는 배경음악 자체를 미장센으로 활용하는 영특한 연출력을 자랑한다.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의 협연, 혹은 기타와 피아노의 컬래버레이션, 때론 스트링의 3~4중주는 각 캐릭터가 가진 갈등과 복선, 그리고 각 시퀀스가 풍기는 구조적 밸런스 혹은 언밸런스를 절묘하게 살려준다.
국수는 없지만 맛은 있다. 길도가 궁락원을 접수하기 위해 육수의 맛을 결정짓는 장맛을 헤치려는 목적으로 장독을 교체한 사실을 유일하게 무명이 알아내는 시퀀스라든가, 각시투구꽃 뿌리가 때론 약이 될 수도, 때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 등은 보편적인 ‘먹방’ 드라마가 놓치곤 하는 디테일의 정수다. ‘국수의 신’은 안 보이지만 ‘마스터’임은 확실한, 오랜만의 웰메이드 드라마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국수의 신' 방송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