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캐릭터의 힘은 강하다. 선하든 악하든, 인간이든 동물이든 마찬가지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최근 월드와이드 누적 수익 10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 ‘주토피아’와 전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기록 중인 ‘정글북’이다.
‘주토피아’는 인간이 만든 문명을 동물들의 세계로 고스란히 옮겨내며 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차별과 배제를 그려낸 우화다. 실제 동물들의 특징을 캐릭터의 성격으로 치환하며 보는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런 덕에 이 영화에는 ‘동물계의 신스틸러’들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정글북’은 19세기에 발간돼 현재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된 원작 소설에 동화적 색채를 입혀 만든 영화다. 컴퓨터 그래픽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한 CG는 동물들의 털 질감을 완벽히 재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유명 배우들이 펼치는 목소리 연기를 통해 관객들의 시청각을 자극한다. 또한 무려 120년이 넘는 시간을 사랑받아온 이야기인 만큼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보유하고 있다.
두 작품 속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는 여느 미남 배우 못지 않은 매력으로 여심을 홀리는 이들이 있다. ‘주토피아’의 여우 닉 와일드(제이슨 베이트먼 분)와 ‘정글북’의 바기라(벤 킹슬리 분)이 그 주인공들이다. 닉은 여우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약삭빠르지만, ‘츤데레 남주’의 전형이기도 하다. 바기라는 검고 윤기 흐르는 털과 날카로운 눈동자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데 인자하면서도 강단 있는 성품으로 신뢰감까지 선사한다. 이 두 멋진 동물들의 매력을 상세히 뜯어 보자.
#1. ‘주토피아’의 닉여우답게 사기를 쳐서 밥을 먹고 살지만, 그 ‘여우다움’ 때문에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캐릭터다. 어쩌면 그의 사기꾼 기질은 사회가 강요한 것일지도 모를 만큼, 닉은 여우이자 육식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해왔다.
그런 탓에 디즈니 영화 남자 주인공치고는 상당히 냉소적이다. 자신을 영악하고 폭력적인 존재로만 여기는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것이 닉의 생존방식이었다. 인터넷 소설을 펼칠 때마다 등장하는 일진짱 남주의 상처 입은 눈빛이 언뜻 보이는 듯도 싶다.
그러나 닉은 세상을 바꾸려 하는 토끼 주디 홉스(지니퍼 굿윈 분)의 열정에 점차 감화된다. 사실 닉이 주디를 속이고 잠적하려고만 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닉은 끝까지 주디의 곁을 지키며 그를 도와준다. 늘 ‘속는 셈 치고’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주디와 함께 자신에게 쏟아지는 편견을 부숴 나가는 그에게는 ‘츤데레’ 매력까지 존재한다.
뿐만 아니다. 극 초반 등장하는 그의 사기 프로세스를 보자. 코끼리용 거대한 아이스크림을 사서 햇볕에 녹이고, 이를 추운 지대로 가져가 발자국 모양대로 얼린 다음 쥐용 아이스크림 수십 개를 만들어 판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게 아니라지만, 이 정도 잔머리면 생활력만은 보장됐다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공부 한 줄 하지 않고 경찰 시험에 합격하는 걸 보면 될성 부른 동물임은 분명하다.
이렇다 보니 영화 말미 닉이 주디에게 날리는 “You know you love me”라는 대사까지 ‘심쿵’ 포인트가 된다. 제작자는 두 동물이 친구 사이라고 말했지만, 감독들이 속편 제작을 염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마당에 닉과 주디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들의 세상에서는 이종교배까지 가능하다니, 색다른 로맨스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2. ‘정글북’의 바기라
바기라는 태생부터가 섹시함 그 자체인 흑표범이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미끈하게 뻗은 몸매는 물론 만져보고 싶은 털까지 이미 외모로 따낸 점수가 만점에 가깝다. 그런 데다가 목소리까지 벤 킹슬리다. 귀족적이면서도 우아한 음성은 강직한 바기라의 성정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바기라는 피가 섞이기는 커녕 정글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주적인 인간임에도 모글리(닐 세티 분)을 거둬 먹인다. 게다가 모글리가 무리 생활이 주가 되는 ‘정글의 법칙’을 체득할 수 있도록 늑대들에게 데려다 주기까지 한다. 과연 사람보다 나은 동물이다.
신념을 꼿꼿이 밀고 나가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격도 매력적이다. 바기라는 모글리가 정글에 정착하기 위해 동물처럼 사는 방법을 교육한다. 도구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1:1 특훈으로 날랜 몸놀림을 가르친다. 인간인 모글리는 바기라의 스파르타식 훈련에 종종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는 정글 생활을 통해 자신이 보았던 ‘옳음’을 모글리에게 물려 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바기라는 모글리가 인간으로서도 정글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의 오판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인간으로 타고난 모글리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바기라의 장점은 이때 빛을 발한다. ‘꼰대’ 아닌 미중년, 바기라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주토피아’의 닉이 트렌디한 매력을 갖춘 남자 주인공이라면, 바기라는 클래식으로 승부한다. 뒤에서 묵묵히 존재하되 항상 곁에 있다는 느낌을 주고, 내게 위급한 순간이 닥치면 상처를 입더라도 맞서는 그의 모습에서는 고전 소설 속 선비 같은 고매함까지 빛났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주토피아’, ‘정글북’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