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조용한 편이지만, 밝은 기운이 뿜어져나온다. 연기자이기 때문에 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해보이는 배우이기도 하다. 분량 상관없이 배우로서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더 많이 감사할 줄 아는, 배우 김영훈을 최근 서울 합정동의 OSEN 사옥에서 만났다.
김영훈은 현재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극본 김수현, 연출 손정현)에서 광고회사 감독이자 세희(윤소이 분)의 남편인 나현우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현우는 극 초반부터 어딘가 비밀이 많아 보이는 남편으로 그려져왔는데, 늘 세희와 아이 문제로 다투곤 했다.
처가에도 자주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고,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세희와 공유를 하지 않아 결혼생활 자체가 위태로워 보였다. 게다가 현우는 일적인 문제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는데, 예민한 성격 때문인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그러던 중 세희가 현우를 아버지라 부르는 한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되면서 모든 비밀이 공개됐다. 그에게 숨겨둔 아들이 있었던 것. 물론 뜻하지 않은 사고였고, 그 또한 아들의 존재를 너무 늦게 알게 되긴 했지만 세희가 받은 충격은 엄청난 크기의 것이었다.
현우를 연기해야 하는 김영훈 역시 이 같은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김수현 작가님이 나중에 이 역할이 어떻게 될 것이란 말씀을 안 해주신다. 그래서 저 또한 이렇게 될 줄 몰랐고, 아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대본을 보고 엄청 놀랐다. 저 뿐만 아니라 연기자들도 다 놀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영훈은 "물론 이 친구가 우울하고 일 중독에 아내에게도 친절하지 않길래 뭔가 있겠다 싶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아들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라고 덧붙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적잖이 놀랐고,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큰 사건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작가님이 써주신 글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작가님께서 용기를 많이 주셨다. 사실 작가님은 '이런 감정이니 이렇게 해'라고 하지는 않으신다. 그저 '그 역할에 한번 빠져봐. 그러면 될거야' 정도의 조언만 해주셨다. 그 말씀처럼 현우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렇게 캐릭터에 푹 빠져들다 보니 그제서야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이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고. 그는 "나중에 글을 보니까 처음에 현우가 했던 말들이 이해가 되더라. 세희에게 아이에 대해 안 좋게 얘기를 할 때는 '딴 여자가 있나', '또 다른 사연이 있나' 등의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 일들이 벌어지고 나니까 세희에게 했던 대사들이 왜 했는지를 알 것 같더라. 사소한 부분도 모두 이유가 있었더라"라며 김수현 작가의 대본 집필력에 연신 감탄했다.
그렇다면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출연을 하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는 "정말 신났다. 말로만 듣던 김수현 작가님 작품 아닌가. 그래서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물론 선생님들도 많이 나오시니까 긴장이 안 됐다고는 할 수 없는데, 어찌되었건 제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게 먼저였다"라고 기뻤던 마음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는 "드라마가 반 정도 왔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좀 더 일찍 작가님 작품을 만나서 해봤다면 제 배우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평생 못 했을 수도 있지 않나. 지금 이렇게 작가님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역할이 크지는 않지만 정말 느끼는 것이 많다"라고 김수현 작가를 향한 끝없는 존경심을 드러냈다.
"작가님이 일상의 부분을 디테일하게 써주신다. 현우처럼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았을 때 하는 표현들이 제 평소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우보다는 좀 더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편이다.(웃음)"
항상 연기 호흡을 맞추는 윤소이에 대해 "정말 열심히 하고 사람들에게 잘한다"고 칭찬을 하기도 한 김영훈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대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순재 선생님이 분위기 메이커시다. 저희들에게 연기를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시지는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된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또 제가 김해숙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같이 연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다"라고 고백하며 수줍게 웃었다.
또 김영훈은 매주 진행되는 대본 리딩이 현재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라고 밝혔다. 김수현 작가, 대선배들 앞에서 리딩을 하는 일은 말만 들어도 식은땀이 날 일임에도 불구하고 김영훈은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좋기만 하다고.
그는 "어떤 친구들은 대본 리딩 앞두고 청심환을 챙겨먹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데, 저는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작가님을 그 때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말씀을 해주실지 궁금하다. 물론 지적을 하시기도 하지만, 툭툭 던져주시는 것들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래서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리딩을 기다린다"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뜻 깊은데, 출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졌다. 제가 가지고 있었지만 몰랐던 미묘한 부분을 느끼게 하고 건드려주시는 것이 있다. 그래서 지금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초조하지 않고 굉장히 편안하다. 저 또한 시청자의 입장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하며 대본을 기다리고 있다." /parkjy@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