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는 '멋진 배우'의 대명사다. 그의 멋짐은 단순히 미모와 늘씬한 몸매, 파격적인 패션 감각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 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얌전하고 조신할 것을 요구당해 온 한국 여성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남성들에게는 여성의 강인함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지를 보여줬다. 그런 의미에서 김혜수는 '걸크러시(여성이 다른 여성을 선망하거나 동경하는 마음 또는 그런 현상)'의 원조다.
그런 김혜수가 작품을 통해 편견과 싸우는 여성들의 편에 섰다. 영화 '굿바이 싱글'(김태곤 감독)을 통해서다. 짐짓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만 보이는 '굿바이 싱글'은 사실, 철없는 여배우가 한 번의 실수로 차가운 세상에 내몰리게 된 여자아이와 우정을 맺으며 대안가족을 이뤄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극 중 김혜수가 그리는 여배우 고주연은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 제멋대로 행동하는 백치미 가득한 인물이다.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을 차려입은 그는 변덕이 죽끓듯 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고생시킨다. 젊은 여배우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입술 성형을 하거나 '아들뻘' 젊은 연하 남자 배우와 열애에 목을 매는 모습은 기본이고, "나는 배역을 만드는 배우"라며 연예인병에 단단히 걸려있어 웃음을 준다. 그런 고주연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은 웃음과 감동을 준다.
지금까지 김혜수는 수십 년간 다양한 작품들에서 여러 배역을 소화했다. '도둑들'의 팹시나 '스타일'의 박기자, '직장의 신'의 미스김처럼 차갑고 신비스러운 인물들이 있었는가 하면 '타짜' 정 마담이나 '관상'의 연홍처럼 도발적인 인물이 있었다.
'굿바이 싱글'의 고주연은 지금까지 캐릭터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인물이다. 특히 전작이었던 '시그널'의 차수현과는 상반된 캐릭터라는 점이 특별하다. 김혜수는 이 작품을 찍은 직후 '시그널'을 찍었고, 또 '시그널' 직후에는 다시 또 다른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 본인에 따르면 일 년에 한 작품 정도만 찍기로 마음 먹었지만, 작품들이 다 마음을 끄는 데가 있어 선택했다. 놀라운 것은 두 작품에서 180도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는 김혜수의 스펙트럼 넓은 연기력이다.
'굿바이 싱글'과 '시그널'은 앞뒤로 찍은 작품임에도 불구, 비슷한 부분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들이라 흥미롭다. 먼저 찍은 '굿바이 싱글' 속 캐릭터가 십대 소녀보다 더 마음이 어린 푼수 캐릭터라면, '시그널'의 캐릭터는 사랑하는 사람이 실종된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노련한 경찰이다. 전자가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마음을 끈다면, 후자는 매번 어려운 사건에 헤쳐 나가는 강인한 여성상으로 응원을 받았다. 거기에 과거 장면 속 젊은 시절, 이를 표현하기 위해 김혜수가 선보인 풋풋한 연기는 반전의 재미를 주는 동시 현재의 차수현과 간극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작품은 모두 김혜수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 과연 '굿바이 싱글'이 '시그널'에 이어 매번 변신을 게을리 하지 않는 '멋진 언니' 김혜수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ujenej@osen.co.kr
[사진] '굿바이 싱글', '시그널'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