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다. 생김새는 물론이고 나이와 성별도 달라진다. 매일 아침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이야기다. 배우라는 직업도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영화 속 이야기처럼 매일 얼굴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작품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캐릭터를 만난다. 그래서 배우에게 가장 큰 칭찬 중 하나는 배우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닌 캐릭터만 보인다는 것이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많은 연기 경력을 쌓은 배우 장근석.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연기자의 삶을 살았다. 아역을 시작으로 병약한 미소년 도령을 거쳐 비운의 왕자 대길이까지 장근석이 배우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캐릭터들을 모아봤다. ‘장근석 인사이드’다.
◇‘황진이’ 김은호 역
비주얼 쇼크였다. 가히 조선의 절세미녀 황진이의 첫사랑다웠다. 배우 장근석은 지난 2006년 KBS 2TV 드라마 ‘황진이’에서 은호도령으로 출연해 안방의 여심을 단번에 흔들어 놨다. 꽃미모에 첫 연정을 품은 황진이(하지원 분)를 잊지 못해 상사병에 걸리는 순정파 도령이었다. 이전까지는 아역의 이미지가 강했더라면, ‘황진이’ 이후로 장근석은 대한민국 소녀들의 첫사랑이 됐고 이후 성공적으로 성인 연기자로 우뚝 서게 됐다.
◇‘쾌도 홍길동’ 이창휘 역
그 다음으로 꼽히는 캐릭터는 지난 2008년 종영한 KBS 2TV 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이창휘 역이다. ‘황진이’와 같은 사극이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장근석이 연기한 창휘는 선왕의 적자인 대군이었지만 죽음의 위기를 겨우 벗어나 세상에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창휘가 품은 복수심을 표현하기 위해 장근석은 늘 시크하거나 슬픔에 찬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운의 왕자라는 설정 때문일까. 만화책을 뚫고 나온 듯한 비주얼은 더욱 빛을 발했던 작품이었다.
◇‘베토벤 바이러스’ 강건우 역
같은 해 말 종영한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음악 천재 강건우 역을 맡았다. 매사 솔직하고 패기 넘치는 성격이다. 비주얼적으로도 큰 변화를 줬다. 머리를 짧게 깎고, 수염도 길러 남성스러운 이미지를 배가시켰다. 자신의 타고난 천재성을 알지 못했지만, 강마에(김명민 분)와 두루미(이지아 분)를 만나 재능을 키워간 성장형 인물이다.
◇‘미남이시네요’ 황태경 역
국내외로 큰 팬덤을 이끈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2009)의 황태경은 그의 인생 캐릭터 중 하나다. 국내 최고의 인기그룹인 엔젤의 핵심 멤버로, 요즘 유행하는 ‘츤데레’(겉으로는 쌀쌀 맞지만 뒤에서 몰래 챙겨준다는 뜻의 신조어)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잘난 것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멋대로 인 구석도 많다. 그렇지만 고미남(박신혜 분)을 좋아하면서 묘하게 귀여워지는 태경의 변화가 재미의 포인트였다. 특히 캐릭터를 살린 장근석의 독특한 억양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대박’ 백대길 역
장근석은 지난 3월 첫 방송한 SBS 드라마 ‘대박’을 통해 2년 만에 지상파 드라마에 복귀했다. 그가 연기 중인 백대길 역은 왕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살아있어서는 안 될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이에 투전의 신으로 성장하게 됐다. 작품을 위해 장근석은 갯벌에 처박히고 절벽에서 떨어지고, 무려 뱀을 씹어 먹는 등 연기 혼을 불태우고 있는 중. 온갖 생고생을 통해 ‘잘생김’도 버린 그는 기존의 이미지를 완벽히 탈피했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장근석은 다음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올까. / besodam@osen.co.kr
[사진] 각 드라마 캡처.